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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Sep 23. 2017

[북 리뷰]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_송은정 (지은이) | 북폴리오 | 2017-08-30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재주이기도 하다.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거나, 천국을 지옥으로 만드는 재주. 그저 마음속에서만 그러다 말면 다행인데,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기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을 아무리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도 그리 되지 않을 때는 물리적 장소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지은이 송은정.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일상적인 불만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내게도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회사는 인문역사서를 만드는 작은 출판사였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직원이었다. 편집이라는 직무는 만족스러웠다. 월급은 턱없이 적었지만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물질적인 공허함을 채워주었다. 물론 그 순진한 마음은 반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 문장 속에 지은이가 처한 오늘이 잘 그려져 있다. 



지은이는 이직을 결심한다. 이곳저곳 알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그래서 아예 멀리 떠나기로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인생의 시간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삶이 유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성취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겠지만, 반대로 나는 천천히 이 삶을 음미하고 싶었다. 내 앞에 놓인 정류장에 하나씩 들르며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정류장을 알아보던 중, 캠프힐(Camphill)에 시선이 머문다.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캠프힐의 원조는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로 알려져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사는 마을을 지칭한다. 지은이는 어디로 갈 것인가 수소문 하던 중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몬그랜지 커뮤니티와 연결이 된다. 예상보다 빨리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북아일랜드로 날아간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했다. 지갑에는 전 재산이 담긴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와 2개의 신용카드가 꽂혀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1년치 비상금을 탈탈 털리고 만 것이다. 내 마음이 다 아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만 안고 있는 그녀에게, 마중 나온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며 힘과 위로를 준다. “여긴 파라다이스는 아니야. 하지만 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지.”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은이는 그곳에서의 일 년 동안의 기록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서 이 책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을 펴냈다. 지은이의 글은 담담하며 진솔하다. 



캠프힐에서는 장애인을 빌리저(villager) 또는 레지던트(resident)라고 부른다. 의미 그대로 마을 주민이다. 그리고 지은이처럼 세계각지에서 모여든 봉사자들은 코워커(co-worker)라고 부른다. 그녀가 머물 몬그랜지는 ‘마치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축소해 놓은 듯’ 했다. 마을 안에는 빵을 굽는 베이커리, 베틀로 러그와 앞치마, 가방을 짜는 위버리, 과일 주스와 잼 등 저장 식품을 만드는 푸드 프로세싱, 작물을 재배하는 드넓은 밭, 소와 돼지 등 가축을 키우는 목장이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마을 안에서 해결되는 셈이다.” 몬그랜지에는 다운증후군과 자폐증을 가진 빌리저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서 교육을 받게 된다. 



지은이는 캠프힐에서 지내는 일 년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겪는다. 그곳이 빌리저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따뜻한 감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빌리저)은 캠프힐에서 정부의 장애인 지원금, 자체 펀딩을 통한 기부금 덕분에 생존권은 보장받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면 빌리저들은 한없이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국가와 사회, 마을, 이웃, 심지어 가족마저도 몬그랜지만큼 저들의 삶을 보듬을 수 있을까. 빌리저들의 평온한 세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돕는 편이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계획되었던 일 년을 잘 채우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문을 나선다. 캠프힐을 떠난다. “몬그랜지는 파라다이스였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답을 좇아 나는 세상에 없는 파라다이스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다른 삶의 길. 지은이의 표현처럼 ‘또 다른 정류장’을 찾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꼭 지은이가 들렀던 정류장을 못 가보더라도, 지은이처럼 어제의 나와 이별을 하고 오늘의 나와 가까워지기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모습으로, 조금씩 매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출구 없는 이별을 기꺼이 되풀이할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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