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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y 11. 2022

설명할 수 없는 거지 같음에 대하여

인생이 참 거지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기분도 좋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나의 기분을 설명할 수 없어서 그 사실이 더 거지 같을 때. 내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 수 없고, 나를 화나게 한 대상도 할 수 없고, 내가 화를 풀 대상도 없다. 


차라리 사기를 당했더라면 나 얼마 사기당했어. 그래서 그 값어치만큼 슬퍼. 이렇게 심플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 감정은 얼마 정도로 별로인지 값을 매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짜증이 어느 정도인지 나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설명을 할 수도 없다. 


이런 기분을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 마음에서 응어리가 잘 풀리지가 않는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응어리는 점점 머리로 이동해서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행동을 만든다. 기분에 생각을 지배당하면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고, 나의 존재는 하나의 마음속 응어리 자체가 되어 움직인다. 


마음의 응어리는 결국 나를 괴롭힌 당사자에게 풀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사자가 누군지도 모르니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기분을 선물 받은 것만 같다. 이럴 때면 그냥 세상 모든 것이 폭파되고 너도 나도 태초에서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그게 또 나만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삼엽충인가 뭔가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때부터 모두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다. 미생물부터 시작하면 또 너무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삼엽충 정도부터가 좋겠다.  


다시 태어나면 어떤 기분일까?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어서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해도 결국 다른 무언가에 상처받고 또 그저 그런 이런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감정의 윤회는 지구가 멸망해도 끊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집 강아지로 태어난다면 조금은 괜찮아질까? 또 강아지는 강아지 나름대로의 슬픔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다시 태어난다면 삼엽충으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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