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이번글은 사주나루와 한발 떨어져서 내가 신점을 보러 갔던 경험을 써보려 한다. 신점을 보려거든 이 글을 꼭 기억하고 코 꿰이는 일이 없길 바란다.
2020년 초여름쯤엔가 친구와 함께 행궁동 점집을 찾아갔었다.
겉보기엔 평범하게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60대 아주머니였는데 우리 차례가 되니 "사납다"고는 자리에 앉으려는 나한테 나가라 손짓을 하는 것이다.
별수 없이 나가서 친구를 기다려야 했다.
얼마 지나 친구가 점사를 보고 나와서 하는 말이
무당이 말하기를 "시부모 모시는 거 힘들지 않냐, 자다 죽으면 호사인데"
하고는 부적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나는 20년 가까이 점집을 배회하고 있다 보니 마냥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양밥, 저주라 하면 암암리에, 아는 사람끼리 은밀하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기에 헉한 건 사실이다.
사주나루도 양밥은커녕 굿이나 치성조차도 금지되어있다 보니 가끔씩 선생님들께 이 일화를 말씀드린다.
(그럼 선생님들도 우리의 뜻을 이해해 주신다)
선생님들이 말쓰하시길 그 점집에선 나를 지켜주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무당이 나가라고 했을 거란다.
그런데 내 친구처럼 맥없이 강요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이게 무속이라 생각한다면?
계속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무속은 혹세무민, 악행으로 치부될 것이다.
무속이란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헌데 양밥이나 저주 같은 개인의 증오와 원한에 비롯된 탐욕이자
남을 해하는 악행이니 조화와는 거리가 멀다.
옛날에 나랏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 한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우리가 신을 도덕적이라 여기는 것도 이런 조화 때문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벌이라는 응보로 결론이 나게 되어있다.
1701년, 숙종실록에는 희빈 장 씨가 무당을 사주해 인현왕후의 죽음을 염원하는 저주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명 무고의 옥이라 하는데, 전말은 이러하다.
주술에 능한 무당을 통해 두개골, 치아, 손톱, 발톱, 뼛조각, 사목, 시체에서 흐른 액을 왕의 처소 주변에 은밀하게 묻고 뿌리는 저주를 행한 것이다.
발각되고 나서 연루된 인물 모두가 처형을 당했다.
이 사건은 무속이 미신으로 치부되는데 크게 기여했던 사건이다.
무당은 한을 풀어주지만 한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내 자식을 괴롭게 하는 친구를 저주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남의 자식을 해하면 범법 행위가 되듯이.
아직도 어딘가에 저주를 의뢰하는 사람도, 행해주는 점집도 있을 것이다.
저주를 행하는 무당은 무당이 아니라 주술사로 보는 게 옳다
앞으로도 저주 양밥을 의뢰하는 이도, 행해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무당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은
인연이 닿는 민중들을 내 자식을 보는 눈으로 자애와 자비를 베풀어온 무당들의 공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