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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06. 2019

자식이 발목 잡는다고 생각하면 나쁜 엄마인가요?

 너는 화가 날 이유가 없다!

                                                                                    

아마 30년도 더 전의 일일 겁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얼마 뒤였어요.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께 가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안 된다고 하셨죠.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공부에 집중하라며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가 자꾸 가겠다고 우기자 결국 화를 내며 나무라셨고 전 기분이 나빠져서 입이 나온 채로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식탁에서 깨작거리는 저를 보며 아버지는 동창회에 못 가게 했다고 그러는 거냐며, ‘너는 화 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창회에 못 가게 된 것보다 ‘나의 감정’이 부정당한 게 더 억울했습니다. 부모님은 훈육을 근거로 나에게 화를 내면서 왜 나는 ‘화난 감정’조차 갖지 말라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훗날 심리학 책을 읽으며 ‘사람이 감정을 부정당하면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수치심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린 시절이 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육아서에서 수없이 나온 ‘감정은 존중하되 행동은 통제하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어른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백화점에서 너무 갖고 싶은 가방을 발견해서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남편이 ‘우리 형편에 어림도 없어! 헛바람만 들어가지고!’라고 비난한다면 그날은 쇼핑이고 뭐고 부부싸움으로 하루를 끝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남편이 ‘정말 갖고 싶은가 봐. 사면 좋을 텐데 너무 비싸네’라고 안타까운 듯 말한다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결론은 같을지언정, 그날 저녁, 따뜻한 반찬을 사이에 두고 정겨운 대화가 오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갖고 싶은 마음을 이해받은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가끔 엄마들이 썼다는 책에서조차, 출산과 육아의 터널을 거치며 직장을 포기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자식 때문에 발목 잡혔다고 한탄하지 말고 현명하게 살아라’는 논조의 글을 봅니다. 경력 단절녀가 되거나, 육아로 업무에 매진하지 못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어쨌든 자식 탓, 사회 탓하지 말고 각자도생 하라는 뜻인가 싶어 저는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핑계 대는 게 아니고 사실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저만 해도 재취업의 기회가 몇 번 왔지만 낯선 곳이라 아기를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 포기했어요. 제 주변에는 아이 네 살 때 어렵게 취직에 성공했지만 아이가 엄마 나가지 말라고, 너무 울다 경기를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눈물을 머금고 사표를 낸 사람도 있고요. 아토피가 너무 심한 아이를 어느 어린이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사직서를 낸 엄마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엄마가 할 나름이라는 건가요?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다 사표 내고 경력 단절되고 하는 게-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드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엄마들에게 한탄조차 하지 말라니, 오래전 어린 시절 감정을 부정당할 때 느꼈던 불쾌함이 다시 느껴집니다. 더구나 ‘자식 탓하지 말고 본인이 자기 길을 개척해서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잘 키우고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고 훈계하는 저자들이 본인의 아이는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 기타 양육가 전적으로 키워줬다고 하는 대목을 읽을 때면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출근을 앞두고 아기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긴 한 걸까? 아픈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들이밀고, ‘엄마 가지 마’ 울부짖는 아이 목소리가 닫힌 문틈을 너머 들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외줄 타기 하듯, 버티고 버티다 결국 사직서를 쓰는 엄마의 심정을 진실로 알고 하는 말일까 싶은 거죠.     


우리는 가족을 고를 수 없잖아요. 가족이 처한 상황도 개인이 바꾸기 힘들고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주인공 길버트는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과 우울증이 심한 엄마에 대한 책임감으로 집에 발이 묶인 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괴로워합니다. <케빈에 대하여>에서 여행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던 에바 또한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갑자기 바뀐 삶의 궤도에 적응하지 못해 무척 힘들어하지요.     


물론 부모는 자식을 양육할 의무가 있기에 길버트와 에바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가족에 대한 부양 때문에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해서 느끼게 되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갈등이나 좌절감의 크기는 많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한탄조차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잔인한 일입니다. 만약 부모가 본인이 괴롭다고 아이 키우는 일을 방치하거나 아이를 학대한다면 그건 당연히 안 되는 일이지만 혼란스러운 마음과 감정을 느끼는 자체로 비난받는다면 출구를 찾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자식이 발목 잡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 한다고 나쁜 엄마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그게 팩트인 경우도 있고요. 감정은 직면해야 더이상 상승하지 않고 하강합니다. 엄마들이 주위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식 키우느라 내 길을 못 가서 참 괴롭구나.’라고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이런 인정조차 엄마로서 죄짓는 것처럼 느끼면 계속 방황하게 됩니다. 현재 내가 지닌 감정의 정체를 파악해야 ‘그래, 괴로운데 그럼 어떻게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자식 탓하면 안 된다!


갈등하는 마음조차 누굴 탓하는 거라며 부정당한다면 자신감을 되찾기 어려울 겁니다. ‘나는 자식 탓이나 하는 못난 엄마구나’ 싶어 다음 단계로 나갈 에너지를 갖기 오히려 힘들어집니다. 굳이 모성신화의 허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엄마 이전에 사람으로서 지니는 감정을 존중받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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