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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Oct 06. 2022

10살까지는 모두가 친구였다


10살까지는 모두가 친구였다.


앞집에 살던 언니와 피아노를 치며 놀았고, 이웃집 남동생과는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녔다. 윗집에 살던 두 살 아기가 귀엽고 신기해 돌보겠다고 나서기도 했고, 머리를 길게 땋은 10층 언니가 지나가면 꼭 달려가 인사를 했다. 남자아이들과는 딱지 치기,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여자아이들과는 모래성을 쌓거나 그림을 그리며 놓았다. 엄마의 구멍가게 옆집이던 미용실은 어른들의 수다가 재미있어 자주 드나들었고, 그런 나를 귀여워 한 미용실 이모는 남는 염색약으로 커트 머리에 노오란 브릿지를 넣어주곤 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더 자라면서는 단짝 친구가 생겼다.


나의 세계를 만들고 타인의 세계를 인지하면서 자연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가까워졌다. 초등학교에서 만나 같은 중학교로 진학한 H와 P는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다. 집이 있는 이쪽 꼭대기에서 대로를 따라 쭉 내려갔다가 반대편 꼭대기로 올라가면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가 있었다. 그 길고 곧은길을 우리는 수없이 오르내렸다. 학교와 집 사이, 내리막이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의 평지 구간에는 미니스톱과 미스터피자, 그리고 파라오 노래방이 있었다. 우리는 하굣길에 꼭 미니스톱에 들러 치킨 한 조각이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고, 때때로 파라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짧은 단발머리의 중학생 셋이 쪼르르 노래방에 들어서면, 주인아주머니는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지칠 때까지 시간을 넣어주시곤 했다.


중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조금 덜 모험적인 청소년이 되었다. 그 무렵에는 조용하고 순한 인상을 가진 친구 셋과 어울려 다녔는데, 사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누구보다 유쾌하고 시끄럽게 떠들며 보냈다. 특별히 어딘가 함께 가거나 인상적인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꺄르르 웃음 짓던 표정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는 3학년 9반의 학급문집을 만드는 요원으로 발탁되며 가까워졌던 것 같다. 1년의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종종 학교에 남아 회의를 하고,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고등학교 땐 벡스코에서 열리는 멜론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고 몇몇 친구들과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방학이었지만 자율학습을 빠지기 위해 심장을 졸이며 담임 선생님께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새벽같이 벡스코에 도착해 달려가 열 시간이 넘게 줄을 섰고, 기다리는 동안 우비를 입은 채 빗물에 젖은 김밥을 먹었다. 저 멀리, 면봉보다 작게 보이는 내가수를 보니 지난밤의 고생이 잊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멜콘팸(멜론 콘서트에 함께 다녀온 친구들)은 곧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되었고, 그중 몇 명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의 친구들이 동친(동물 친구들)이 되어 졸업까지 함께했다.    


매일매일 가는 학교에는 매일매일 보던 친구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보다 훨씬 수동적이고 반복적이던 그 일상이 지금보다 덜 지치고 덜 힘들었던 이유는 착 달라붙어 서로에게 웃음과 위로가 되어주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가만히 앉아 칠판이나 책만 응시하던 50분이 지나면 10분 간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산책하며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매일매일 붙어 다니며 일상을 나누는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파라오 노래방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마지막 곡으로 부르고서야 집으로 향했던 H와 P, 조용한 듯 유쾌하게 학급문집을 함께 만들었던 세 친구들, 이제는 여섯 중 세 명이 엄마가 될 예정인 동물 친구들. 이들 외에도 학년마다 시기마다 매일같이 붙어 다녔던 소중한 나의 친구들은 여전히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계절이 바뀌기 전에 얼굴을 마주하자고 약속하며 그 자리에 있다.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구’의 존재 방식과 정의가 바뀌는 것 아닐까.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경험을 나누지는 않지만 먼 곳에서도 의지가 되어주고,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려 웃을 수 있는 힘을 주니까. 매일, 자주 보는 존재만이 친구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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