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180. 헤일 메리 'Hail Mary'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321.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고 왔다. 우리에겐 영화로 더 친숙한 '마션'이란 영화는 본래 소설이 원작이다. 헌데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신작을 또다시 영화화 한 작품이 개봉했다고 해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의 제목은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 메리(Hail Mary)'

경기 종료 직전, 시간이 거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역전 또는 극적인 득점을 노리고 던지는 매우 길고 성공 확률이 낮은 패스를 말하는 미식축구 용어다. 쿼터백이 엔드존을 향해 공을 높고 멀리 던지며, 기적을 바라며 던지는 '이판사판'식 최후의 수단을 말한다.


마지막 패스의 결과를 알고도 던지는 사람이 있을까?

성공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실패할 게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질 수밖에 상황. 미식축구에서는 그 절박한 마지막 도박을 '헤일 메리(Hail Mary)'라고 부른다.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만 하는 그 패스.

제목 하나로 이야기의 맥락과 분위기를 이토록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헤일 메리' 성공 확률이 극히 낮지만 기적을 바라며 행하는 최후의 시도. 영화 제목만으로 이미 이야기의 온도를 모두 담고 있었다.

이름 하나로 전체의 맥락을 설계하는 것. 기획자로서 이보다 잘 지어진 제목을 최근에 본 기억이 없다.

솔직히 나는 SF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지라 과학적 개념들이 넘쳐나는 장르 특유의 문법이 낯설기도 했고, 우주라는 배경이 내 일상과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압도적인 시각 효과로 볼거리는 많지만, 그에 반해 이야기 자체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달랐다. 분명 장르는 SF영화였지만 감성 브로맨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느낌이랄까? 영화 상영 내내 눈이 아니라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영화는 한 남자(극 중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가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곳이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평범한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그는 아무 기억도 없는 상태로 우주 한복판에서 깨어난다.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 속에서 그는 자신이 죽어가는 태양으로부터 지구와 인류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임무를 맡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중반부부터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독한 여정의 끝자락 최종 목적지인 '타우 세티' 근처에 다다른 그는 다른 항성계로부터 온 외계 생명체 '로키(Rocky)'와 조우한다. 처음 로키가 등장하는 순간의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지의 존재는 적일까, 동료일까?

그레이스도 모르고, 관객도 모른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두 존재가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장면(Key Scene)'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장면에 등장하는 로키는 CG가 아닌 실물 인형이었다고 한다. 인형사 '제임스 오리츠'와 다섯 명의 퍼피티어가 직접 로키의 움직임을 조종하며 연기했고, 이 방식은 현장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 몰입도를 높이고 캐릭터의 현실감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였다고 한다.

CG 기술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것을 굳이 어렵게 실물로 만들어 연기한 이유에 대해 감독인 '필 로드'는 한 인터뷰에서 '단순히 기술 문제에 국한해 내린 결정이 아니라, 홀로 우주선 세트에서 연기해야 하는 라이언 고슬링을 위해 로키만큼은 물리적 실체여야 했다'고 말했다. 즉, 배우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믿음. 그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결국 영화 전체의 온도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상품기획을 하다 보면 비슷한 고민의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효율을 택할 것인가, 본질을 택할 것인가. 빠르고 싸게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을 고집하는 순간들. 소비자는 그 차이를 '이유'로는 설명 못 하지만 '느낌'으로는 정확히 감지한다. 만약 로키가 CG였다면 이 영화는 지금과 같은 온도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극 중에서 '그레이스 박사'와 '로키'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낸 최초의 언어는 숫자였다.

두드리는 소리로 숫자를 교환하고, 시계를 통해 시간의 개념을 공유하며, 물리 법칙을 통해 공통의 문법을 만들어간다. 말이 통하기 전에 먼저 서로에 대한 '관찰'이 있었고, 관찰 전에는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지. 그것이 언어보다 먼저 작동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기획자가 가장 자주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소비자에게 말을 걸기 전에 충분히 관찰하지 않는 것. 먼저 다가가려는 의지 없이 단지 우리의 언어로,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먼저 설명하려 드는 것. 하지만 진짜 소통은 언제나 상대의 언어를 먼저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그레이스는 로키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함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갔다.


사실 그레이스는 자원해서 이 자살 임무에 파견된 것이 아니었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밝혀지는 이 사실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무게를 다르게 만드는 장치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낯선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넘어 더 큰 서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실패가 두려워서 거절했던 한 사람,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지막 패스를 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기적을 현실로 만든다.

영화는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공을 던져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공을 아예 던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극장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3월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뿌옇고 별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저 너머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혼자 문제를 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는 어쩌면 기획이라는 일도 그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답을 알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눈을 떠서,

주어진 단서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결국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때로는 로키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언어도, 방식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같은 문제 앞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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