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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Jul 31. 2019

지금 나는 무슨 냄새가 날까?

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버는 돈은 없고 계속 지출만 하니 생활이 퍽퍽해지고 허리띠를 더 꽉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치장에 들이는 소비가 확 줄었다. 옷, 신발을 안 사고 머리를 안자르고 주기적으로 하던 매직도 안 하고 산발머리를 질끈 묶고 다녔다. 그중에 줄이다 못해 100% 완전히 소비를 멈춘 품목은 '향기 나는 제품'이다. '향기'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 내 주제에 맞지 않는 사치고, 향기는 생필품이 아닌 삶에 부수적인 품목이 이라고 생각했다. 전에는 주머니가 가벼워도 돈을 모아 향수 몇 개 정도는 사모을 정도로 향기를 좋아했지만, 지금 이 거지 같은 내 삶에 향은 딱히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더럽게 비싸기만 한.. 그런 존재였다.

 

 집에만 있다 보니 머리가 떡이 질정도로 한참 안 감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어느 순간 머리 위에서부터 꾸릿꾸릿한 냄새가 내려왔다. 2018년 그 해 처음으로 머리 감은 지 3일이 넘어가니, 나는 내 정수리 냄새를 처음 맡아봤다. 이 정수리 냄새에 못 이겨 그제야 머리를 감으려고 보면 집에 선물로 들어온 한방 샴푸밖에 있는 게 없었다. 한방샴푸는 머리를 감으면 하루 종일 한약 냄새가 내 코를 따라다닌다. 한방샴푸의 성능이나 제품에 하자가 있진 않지만(오히려 두피에 좋음.) 난 그 냄새가 너무 독하고 불호였다.


 한방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새로 샴푸를 사기에는 돈이 아까워 그냥 있는 걸 있는 대로 쓰며 살았고, 바디로션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에 손이 뜨고 종아리나 입술이 건조하면 바디로션 대신 싸고 성능 좋은 무향 바셀린을 발랐다. 한 여름에 겨드랑이에서 폭발한 땀은 물티슈로 대충 닦고 말려주었다. 그렇게 밖에 나가서 대충 바셀린과 물티슈로 건조함과 냄새를 해결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우면 매트 위에선 오래된 책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짐이 가득 싸인 사과박스의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온통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에 둘러 싸여 보낸 하루가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계속됐다.


난 왜 내가 원하는 냄새를 선택하며 살 지 못하는 걸까? 난 왜 이 사소한 것까지도 참으며 살고 있을까... 향기란 건 보이지도 않고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찰나의 순간으로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난 왜 이 좋음 마저도 거세하며 살고 있을까?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주인에 붙어있는 코지만. 내 코는 열심히 일하며 나한테 나는 냄새와 내 주변 냄새를 하루 종일 나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꾸릿꾸릿한 냄새가 나거나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향기가 나거나, 이 둘 중 하나의 상태일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난 뒤 내 주변에 나는 퀴퀴한 냄새가 사라졌다. 깨끗한 공간, 밝은 조명, 예쁜 침대와 책상. 이 방을 좀 더 근사한 향으로 채워 분위기를 완성하고 싶어 졌다. 침대에 놓을 중저가의 리필용 디퓨져를 사고 집에 돌아다니던 예쁜 유리병에 조화 꽃을 한송이 꽂고 우드스틱까지 꽃아 리필 용액을 반만 넣어주니 잘 때 머리 위에서 은은하게 향기가 났다.


 그동안 써왔던 오이 비누 대신 클렌징 폼과 바디워시를 쓰고, 씻고 나와서 바디로션을 발랐다. 물론 형편상 아껴 써야 하니 온몸에 치덕치덕 바르진 못하고 건조한 부분에만 발라줬다. 샴푸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두피가 예민하고 머리에 기름이 잘 끼는 머리카락이라 향기로만 정착하기에는 두피에 무리가 갔다. 몇 가지 두피에 좋은 제품으로 시도해보다가 냄새는 은은한 풀향이 나면서 두피 기름을 잡아주는 샴푸로 정착했다. 좋은 향기가 강하게 나진 않지만 정수리 냄새도 나지 않는다. 건강한 두피와 은은한 향기를 함께 얻었다. 버블 메이커를 구입해 두 번 펌핑에도 거품이 가득 생기게 한 다음 사용해서 샴푸 사용을 절약했다.


 가끔씩 외출할 때면 나가기 전 향수나 바디 미스트를 은은할 정도로만 칙- 뿌려줬다. 1시간도 안돼 바로 냄새가 사라져도 괜찮았다. 그 순간 향기를 맡고 잠깐 기분이라도 내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한여름에 겨드랑이 홍수는 물티슈 중에 데오드란트 물티슈가 있어서 세일할 때 하나씩 사서 외부로 나갈 일이 생기면 틈나는 대로 화장실에서 닦아주니 겨드랑이가 뽀송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향기도 좋으면서 저렴한 제품을 찾고, 세일 기간을 노려 나와 내 주변에 향기를 입혔다. 조금 더 돈을 쓰니 나에게서 느껴지는 좋은 향기만으로 내가 꼭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기분전환이 됐다. 한 달에 몇만 원 더 아껴서 뭐하겠어. 최소한의 향기로 내가 이렇게 기분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 기분으로 다시 기운을 내서 열심히 벌자. 이렇게 마음을 갖고 나니, 돈이 없어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줄어들고 나를 나 스스로 아끼는 소중한 마음이 차올랐다.



-리필용 디퓨져: 1만 원대

-조화, 우드스틱: 1~2천 원

-향수 및 바디 미스트: 롭스 데메테르 향수 세일가 1만 원, 바디판타지 1만 원, 세일 시즌을 노리기.

-샴푸: 지성 두피용 샴푸 어라운드 미 스칼프 스케일링 샴푸 7천 원~1만 원

-버블 메이커: 제조사에 따라 가격차 있음. 작자는 어퓨에서 2천 원대 구입.

-데오드란트 티슈: 양에 따라 제조사에 따라 1천 원~1만 원 가격 다양, 작자는 '미스 사사' 제품으로 세일할 때 2천 원대 일 때 구입.






기분을 바꿔주는 잠깐의 마법. 나에게 나는 냄새의 주도권을 갖기.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제에서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다른 방법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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