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 있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누군가는 높은 위험성을 놓고 일을 벌여 엄청난 보상을 얻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위험성을 감당할 수 없다. 보통은 정말로 위험해지면 헤어 나올 길이 없기 때문에 안전한 삶을 선택한다. 엄청난 보상은 얻을 수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 삶을 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이 되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참 많은 희로애락이 있다. 잘못 만난 직장 상사는 삶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때로는 엄청난 업무량에 야근을 계속할 수도 있다. 요즘은 주말 수당이 나오지만, 주말에 일한다고 딱히 나오는 게 없을 때는 주말에 일하는 게 참 억울했다. 일요일 밤은 어찌나 우울한지, 월요일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 모든 걸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힘은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다. 지금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고 잘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월급, 그것 때문에 직장인은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을 가면을 쓰고 살아가듯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 이렇게 힘든 일만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모래 속에서 사금을 줍듯해도 좋은 날이 없진 않았다. 드물긴 해도 회사 다니면서 좋았던 날들도 있다. 내일 하루 출근할 힘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또 나쁘지 않은 회사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그런 날들을 되새겨보곤 한다.
회사에서 가장 좋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일이 잘 되는 것이다. 일이 굴러가지 않으면 일정에 쫓기게 되고 그러면 서로 얼굴을 붉힐 확률이 높아진다. 굴러가지 않는 일은 야근의 원천이 되고 서로를 혼내는 원인이 된다. 심하면 내리 갈굼이 발생하기도 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은 잘 되어야 한다. 일만 잘 굴러간다면 옆의 사람이 놀든 빠지든 관심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분위기도 좋아지고 퇴근도 하기 쉬워진다. 일이 잘 굴러가는데 딴지가 걸린다면? 그건 꼰대질일 확률이 높으니 도망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일이 자동으로 잘 굴러가진 않는다. 일을 잘 굴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능력을 발휘한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정치질을 한다거나 괜한 갈굼을 시도한다면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 온 거다. 어이가 털리고 박 터지게 싸우고 휘리릭 이직을 해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 운은 좋은 편이다. 자기 능력을 발휘해 일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으면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다.
좋은 매니저를 만나면 이때부터 참 좋다. 보통은 회의실에 앉아서 일을 나눠가진다. 적합하게 일정을 의논하고 어떤 순서로 진행시켜 나갈지 정한다. 서로 납득 가능할 만큼 일을 나눠가지면 기분이 좋다. 내 나름대로 개인적인 삶을 지킬 수 있고 지치지 않을 만큼만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정치적으로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맡은 일만 해내면 된다는 만족감이 생긴다. 이럴 때는 새삼 매니저의 능력을 존경하게 된다. 그 정도만 되어도 운은 정말 좋은 편이다.
운이 더 좋으면 좋은 동료를 만날 수도 있다. 누구나 신입 시절에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갓 이직을 해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도움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보통은 모두 바빠서 도움을 받기가 곤란하다. 그 바쁜 와중에 내게 손을 뻗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정말 고마운 존재다. 물론 서로 돕기 위해 팀이 있는 거고 서로 도와주는 것도 업무의 일부이지만 인간적으로 고맙다. 일을 진행하다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일할 맛이 난다. 회사 분위기도 좋아지고 나도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럴 때는 직장에 다니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나쁜 동료를 만나면 조금 힘들다. 능력이 살짝 모자라는 경우는 차라리 낫다. 도와주면 되니까. 내가 좀 더 일을 많이 하게 되더라도 그건 견딜만하다. 주변 사람들이나 매니저가 내가 더 일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나도 모자랄 때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만하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정도가 심한 사람이 있다. 성격이 나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 경우 그렇다. 신입인 경우는 그럴 수 있어서 웬만하면 넘어가는데 경력이 상당히 오래되었는데도 이상한 사람이 있다. 내 경우는 사람은 좋은데 도통 일머리가 없는 사람이 있었다. A 부서에 요청해야 할 일을 B 부서에 요청하고 일의 방향성을 도통 잡지 못해서 엉뚱한 일을 벌이곤 했다. 경력이 오래돼서 중요한 일을 맡기곤 했는데 도통 일이 굴러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하고도 일은 유야무야 되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든 일을 맡아서 말끔하게 해치우고 나면 기분이 좋다. 끝냈을 때의 성취감도 좋고 나 자신도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좋다. 큰 프로젝트를 끝내면 더욱 기쁘다. 매니저가 적절히 일을 나눠주고 팀원들은 정해진 업무를 정확히 끝내면 퍼즐 조각처럼 일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사고가 발생해서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 정말 보람차다. 그러고 나면 서로를 존경하게 되고 협업하는 일도 좋아진다. 그런 날에는 회식을 해도 전혀 귀찮지 않다. 기분 좋게 회식을 하고 서로 수고했다고 말해준다.
꿈같은 회사 생활이지만 그런 날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임원 잘못 만나 일만 푸지게 하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나가는 경험도 해보았고 어쩔 수 없이 좋았던 팀이 해체되기도 했고 성격 나쁜 사람 만나서 화장실에서 울어본 적도 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날도 있었다. 서툴기만 했던 신입 때를 생각해보면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의사소통하는 법도 좋아지고 조직을 움직이는 방법도 알아가고 배우기도 참 많이 배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제 회사 물을 좀 먹어서 회사에 익숙해져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에는 출근하기가 싫다. 낮에는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퇴사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산다. 좋은 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그래도 종종 좋은 날을 생각해보는 건 나라도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도 회사 다니는 일이 그렇게 나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 스스로 힘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적어놓고 보니 사측이 된 듯한 기분도 들지만,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생활이 어떤지도 기록해보고 싶었다. 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직장인 분들도 좋은 회사 생활만 경험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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