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3시간전

한글공부는 못 도와줘도,
덕질은 도와주마!

공부보단 덕질이 재밌잖아

첫째(가을이)가 7살(만 5세)에 접어들면서 한글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유치원에서 ‘한글 프로젝트’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도 한글을 잘 읽고 쓰는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올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였던 것 같다. 아이는 집에 와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 나도 ㅇㅇ처럼 한글 잘 알고 싶어~ 엄마가 좀 도와줘~"

"응 그래~! 가을이도 한글 잘하고 싶구나? 모르는 거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가 알려줄게~!"


아이의 요청에 나는 화색을 띠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으앗! 공부를 시켜달라고? 난 자신 없는데;; 같이 놀아주는 것도 어려운데; 공부라니;;; 저번에 피아노 가르쳐 주다가도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단 말이야. 그래서 엄마가 차라리 피아노 학원을 보내주겠다고 했잖아 ㅠㅠ(하지만 학원은 싫데서 보내지 않았다.) 게다가 공부시켜주는 건 엄마도 재미없다구 ㅠㅠㅠㅎ'


나는 유치원 때까지는 공부를 시키지 않겠다는 주의다. 배워야 할 건 거의 다 유치원에서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에서도 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시에 하원해서 집에 오면 자기 전까지 (먹고 씻는 시간 제외하고) 놀 시간도 부족한데 공부라니!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글은 내년에 학교 가면 또 가르쳐줄게 아닌가! 학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싫어도 해야 하는 게 공부인데, 그전까지는 좀 놀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한글을 알려달라고 하니 난감하다;; 대답은 호기롭게 했지만, 나는 사실 그 후로도 아이를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이 글자는 어떻게 읽는 거냐, 어떻게 쓰는 거냐 물어보면 알려주기는 했어도 일부러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흐르고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얼마 전 아이와 마트에 갔다가 장난감&문구 코너에서 아이가 뭐라도 사달라기에 만원 이하로 고르라 했더니 아이는 대뜸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세트를 골랐다. 집에 와서 뜯어보니 네모 칸으로 되어있는 ‘10칸 국어 공책’이었다. 한 칸에 한 글자씩 써넣는 공책이라고, 학교 가면 한글 공부 할 때 이 공책을 쓴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책상에 앉아 그 공책을 펼쳐놓고는 열심히 한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는 단어들을 열심히 적어 넣다가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한참을 앉아 그렇게 쓰면서 자꾸만 물어보기에, 나는 꾀를 내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집안일하다가도 아이가 모르는 글자가 나올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려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책에 열심히 한글을 쓰던 가을이

"가을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책을 따라 써보는 거야! 가을이 어릴 때 읽던 글자가 많지 않은 책부터 한 번 따라 써봐!^^" 그렇게 말하고는 간단한 단어들이 반복되어 있는 책을 한 권 가져다주었다.


다행히 가을이는 나의 아이디어를 반겨주었다. 내가 가져다준 책을 금새 다 쓰고는, 자기가 새로운 책들을 골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는 필사에 열심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심지어 어딜 나가면서도 아이는 그 공책을 챙겨 들고나가 열심히 한글을 썼다.


나는 생각했다. '아, 엄마가 공부를 안 시켜주니까 결국 아이가 스스로 저렇게 하는구나.ㅋㅋㅋ' 물론 며칠 열심을 보이다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했다는 데에 나는 큰 의의를 두고 싶었다. 공부란 결국 그래야 하니까 말이다. 누가 등 떠밀고,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어른인 나도 하기가 싫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잘하고 싶어서, 내 의지로 하는 공부는 재밌는 법이다. 아이가 그 재미를 조금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귀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글공부와는 반대로 굉장히 나의 흥미를 자극한 분야가 있었으니(그러니까 내가 재밌어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덕질’이었다.


나도 덕질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 분야의 것을 하나둘씩 모으는 재미를 나는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코카콜라 수집에 열심이었는데, 주변 지인들도 그걸 다 알고 있어서 해외에 가서 특이한 코카콜라가 있으면 사다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언젠가부터는 ‘한복’의 매력에 푹 빠져 한복을 열심히 사입을 때가 있었고, 토이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 빈센트 반고흐라는 화가에 푹 빠져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는 것은 나의 소소한 재미였다. 여전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간간히 특이하고 예쁜 것들을 발견하면 모으기도 하지만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수집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이 둘 육아를 하면서 그 많은 수집품들을 둘 곳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코카콜라도 아주 많이 처분했다 ㅠㅠㅠ) 덕질에 쓸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이제는 육아에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첫째 딸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특별히 좋아했는데, 첫째는 딱히 애정하는 게 없었다. 그 흔한 애착인형도, 애착이불도, 애착 무언가도 없었을뿐더러 좀 더 크고 나서도 모두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같이 좋아하기는 했으나 그것도 다 잠깐씩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7살에 접어들면서 (6살 후반부터였나) ‘산리오(헬로키티를 중심으로 하는)‘ 캐릭터들에 관심을 부쩍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중에서도 '쿠로미'라는 캐릭터에 푹 빠진 것이었다.


나는 사실 그 사실이 반가웠던 것 같다. 아이의 취향이 확고하니 무언가를 사줄 때도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서이기도 했겠지만, 나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덕질 본능이 다시금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동안 덕질을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던 참인데, 아이가 쿠로미 타령을 해주니 나는 그 장난에 맞춰 춤만 추면 될 일이었다. 결국은 이게 아이의 덕질인지, 아이를 통한 나의 덕질인지 구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적극적인 덕질 서포트로 아이는 ‘쿠로미 인간’ ‘보라인간’이 되었다.

놀랍게도 미처 꺼내오지 못한 물건들도 꽤 있다.

한글공부는 시켜달라고 해도 안 해주는 엄마가, 아이의 덕질에는 이렇게 열을 올린다. 누가 보면 난 좀 이상한 엄마지만, (갑자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ㅋㅋ) 난 좀 이상하고 자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 결국 나는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즐거움을 주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한글책을 필사하면서 글자 공부를 할 때도, 좋아하는 캐릭터에 푹 빠져보는 것도 아이가 그 일들을 통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의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난 그저 그뿐이다.


ps: 아이는 요즘 갑자기 한글 책을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제법 긴 문장도 혼자 읽는 아이를 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내가 안 가르쳐 줘도 아이는 어디선가 배워온다 ㅋ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를 일찍 재우는 것에 대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