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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28. 2024

아이들의 ”테이크 앤 기브“

아이들과의 양질의 시간은 다시 아이들을 돌볼 힘을 준다.

오늘은 전날의 피로가 쌓여 (전날은 그 전날, 그 전날은 또 그 전전날의 피로가 쌓였겠지만) 유독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슨 바람은 무슨 바람, 가을이 되었으니 찬바람이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나는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옷장 정리를 하다 보니 창고 정리도 하게 되었고, (그러다 손을 좀 다쳤고) 당연스럽게 빨래도 돌리게 되었다. (집안일의 연쇄작용이란….;;;) 게다가 오늘은 밖에 나가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있는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집안일이 집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버거운 것을 보니 오늘은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겠다 싶어 비타민B도 두 알이나 털어 넣고 시작한 하루였지만, 나는 사실 오전 내내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는 약간 정신을 차리는 듯했지만, 오후 동안에도 딱히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밖에서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장을 보면서 옷걸이를 샀고 나는 집에 돌아와 옷장정리를 마저 했다.


그렇게 바삐 보내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온다. 이쯤 되면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저녁 메뉴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하원 후에는 무얼 하며 놀 것인지 등등 말이다. 5시에 하원하고 날이 좋아 바깥놀이를 할라치면 금방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는데, 아이들은 놀다 보면 재미나니 절대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고 그런데 배는 고프고, 상황이 그렇다 보니 결국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컷 놀고 집에 들어가도 간식으로 배가 찬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슨 바람은 무슨 바람, 바깥놀이 하기 딱 좋은 선선한 가을바람이지)  고민 끝에 간단한 도시락을 싸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 부지런히 아주아주 심플한 김밥을 싸고 큰 텀블러에 음료를 챙겼다.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등원을 전쟁이라 하는데, 하원은… (어쨌든 등원보다 훨씬 긴 시간이지 않은가. 이건 전쟁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다.) 어차피 놀아줘야 할 거, 제대로 놀아보자! 싶은 마음으로 하원길에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간 둘째를 먼저 하원시킨 뒤, 킥보드를 타고 간 첫째를 데리러 갔다.


둘째는 역시나 하원하자마자 집에 갈 생각은 없다. 이제 어딜 갈 거냐고 묻는 너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공원으로 자전거 타러 가자고 말했다! 엄마가 도시락도 싸왔다고 하자 신이 난 둘째. 첫째를 데리러 가는 길, 수요일마다 유치원 옆 길목에서 양말을 팔러 오시는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유독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자전거도 탄다고 기특해하시며 둘째에게 대추를 잔뜩 쥐어주시는 아저씨. 한입 베어문 여름이는 이상하다고 싫어라 했지만, 나는 달달한 대추를 아저씨의 응원이라 여기며 아삭아삭 먹어본다. 첫째까지 하원을 마치고 공원으로 향하는 길. 아이들은 신이 났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폭포 앞에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자는 첫째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여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사실 정말 별 것 아닌 도시락인데 아이들은 연신 맛있다고 엄지 척! 했고, 둘째는 ”도시락 싸주는 엄마 최고! “ 하면서 나를 안아주기까지 했다. 하원 전에 부지런을 떤 보람이 있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밥도 먹었으니 매점을 가는 마음도 가볍다. 원하는 간식을 하나씩 골라 매점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선선한 바람도, 짙어져 가는 노을도, 모두 ‘아이들과 공원에 나오기를 잘했다’고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그냥 공원에서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는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지만, 집에서 집안일로 종종거리며 아이들을 밀어내기 바쁜 저녁시간을 생각하면 이것이야 말로 아이들과의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두 시간가량 아이들과 바깥놀이를 하고 나니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은 오히려 꽉 찬 느낌이다. 퇴근하고 뒤늦게 남편이 합류했지만, 남편도 오늘따라 피곤했는지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주지 못했다. 결국 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설거지를 하고 이를 닦이고 책을 읽어주고 재우는 것까지 다 도맡아 했다. (그 사이 남편은 빨래를 개고 전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을 상황이었다. 아빠 주변을 맴도는 둘째에게 “아빠 피곤하니까 혼자 가서 놀아!”라고 말하는 남편을 한대 후려 치고 싶은 맘도 없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이 이해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평소의 나라면 뭐라고 한마디라도 했을 터였다. 참지 않지!!!) 그런 내가 나도 신기했다. 그건 아마도 아이들과의 바깥놀이 시간 덕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설령 내 에너지를 상당히 소비하는 일이었다 할지라도, 아이들과의 눈 맞춤이, 대화가 그리고 포옹이 주는 에너지가 나를 다시 채워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육아라는 게 그렇다. 정말 내 몸과 마음을 (골수부터 뇌세포 하나하나까지) 아이들에게 쪽쪽 빨리는 것 같은 게 육아인데, 또 그런 나를 다시 채워주는 것 또한 아이들이라는 것이 이 육아를 계속 해나가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이 아이러니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아자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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