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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r 08. 2019

정시퇴근 한다고 '알바형 인간' 이라니요?

거 참 너무 하십니다.

봄이 오고 있다. 목도리는 두르지만 패딩은 입지 않기로 한다. 고층 빌딩 앞 삼삼오오 모여 흡연하는 사람들. 골목 가득 풍기는 담배연기 덕분에 초미세먼지의 탄 냄새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직장인들의 성지인 이곳, 광화문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회사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야근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

인성이나 기초역량, 업무성과는 크게 중요치 않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나도 주변 사람들과 퇴근시간을 맞추는 "야근하는 자"였다. 조금만 뽐내도 평가는 늘 상위권이었다.


워킹맘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정시퇴근을 한다. 정시퇴근을 해보니 정시퇴근자는 주도면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시키지 않아도 조금 일찍 출근해 하루 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to do list에 우선순위까지 매겨야만 하루 시작이 편하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조급하다. 동료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워킹맘은 그런 존재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오늘 갑작스레 회의가 소집되었다. 팀장님이 아닌 실장님이 소집하는 긴급회의에 주제가 궁금하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을 하시려고..

회의가 시작하고 초반 약 10분간은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김대리 요즘 애 잘 커? 애 몇 살이지? 어린이집 다녀?" 내겐 주로 아이에 대한 질문이다.


근황 토크가 끝나고 실장님이 괴고 있던 한쪽 팔을 슬그머니 빼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지금부터가 본론이구나.

모두가 눈치채지 않도록 연신 시계를 본다.

이미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서고 있다.




"나는 정시 퇴근하는 여직원은 세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해."

생각지도 못한 주제다. 이건 선빵이다.

그는 정시 퇴근하는 여직원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한다.

첫째, 알바형 인간.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대충 다닐 생각.

셋째, 집에 있기 싫어서 나오는 것.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셋 중에 몇 번인지를 묻는다. 순간 머리가 핑~ 하고 어지러웠다. 팀장님과 후배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그들 숨소리 끝의 미세한 떨림이 나에게 곧장 전해져 온다. 창피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회의의 목적을.

왜 많은 시간 중 퇴근시간 30분 전인 오후 5시 30분에 시작했는지를.


아, 오늘 회의의 목적은
정시 퇴근하는 나 때문이로구나.


참고로 그는

우리 회사의 인사실장이자 나의 2차 상사다.






글/그림: 꽃개미

회사원.

배울 만큼 배웠고, 상냥하고, 일도 곧잘 합니다.

불필요한 야근은 안하겠습니다.

정시퇴근을 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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