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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r 11. 2019

나를 모욕하는 상사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회의 같지 않은 회의에 회의감이 든다.

이미 회의실시계는 6시 15분을 넘기고 있다.

그는 분명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고 있다. 슬며시 팀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팀장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친한 후배도 내 눈빛을 의식하며 연신 딴청을 피운다.

회의실의 이 차가운 공기가 말해주고 있다. 다들 난감하구나 이 상황이.


 


 

"김대리는 맞벌이지? 여기 나머지는 외벌이야."


그는 내가 정시 퇴근하는 이유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본인의 직위를 의식하는 듯 조심스레 내 표정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치밀하다. 저 정도의 치밀함과 인내심이 있기에 저 자리까지 올라간 걸 거다. 와중에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를 모욕하는 상사 앞에서 할 수 있는 것.


근데 이쯤 되니 슬슬 고민이 생긴다. 도대체 지금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회사생활을 하며 수많은 또라이를 접해왔지만, 이렇게 난감했던 적은 없었다. 모든 상황에 대해 최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빠른 판단력과 실행. 그것만이 살길이다.


울면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간다.

가장 먼저 생각한 방법이다. 실제로 같은 팀 동료가 본인이 희망하지 않는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자 행했던 방법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뛰쳐나가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다. 아마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임팩트 줄 수 있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의 눈물은 그녀가 한심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는데 정점을 찍어줬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울면서 뛰쳐나간다면 오히려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직장에서의 눈물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따진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정시 퇴근한다는 이유로 이러시는 건가요?"

건 곧 상사의 멱살을 잡는 것과 같다. 언젠가 내가 또라이 선배와 업무적인 부분으로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내내 이런저런 말들로 비꼬며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참지 못한 내 입에서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선배가 해보시던가요."라는 말이 나왔다. 이후 내가 내뱉은 말은 '팩트'가 되어 빠르게 퍼졌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든 내가 그 말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버릇없는 후배로 낙인찍힐 뻔했던 짜릿했던 그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바로 오늘, '정시 퇴근하는 알바형 인간'도 모자라 '인사실장에게 대든 난년'이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되는 대참사가 그려졌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바일지 모른다.

 

회의는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앞으로는 일이 먼저 끝나 더라도 팀원들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 '팀원들 모두 다 함께 퇴근하라'는 말과 함께. 


아아, 그래서 결국 어떤 선택을 했냐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액션을 취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다 변명해 보지만, 나는 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묵보다 더 나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면,

때론 가만히 있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특히 지위와 권력이 있는 상사와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평범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물론 내가 '낙하산'이거나, 지금 당장 사표를 던질 생각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를 모욕하는 상사 앞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대한 내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마인드컨트롤 할 뿐.





글/그림: 꽃개미

회사원.

배울 만큼 배웠고, 상냥하고, 일도 곧잘 합니다.

불필요한 야근은 안 하겠습니다.

정시퇴근을 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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