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솔직히 내가 마블 영화를 보고 호평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평소에 심심하면 마블 영화 가져와서 예시로 들며 비판하고 하지 않았는가? 뭐 근데 사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은 대부분의 나포함 영화팬들에게 약간 애증의 존재다. 분명 비판할 지점이 산더미이고 이 영화산업 생태계를 망치고 있는 주범이며 이걸 영화라고 과연 부를 수 있을지 애매한 시리즈의 연속성에, 지금의 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까지 고려한다면 이 정도로 욕먹는 것쯤은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지금도 생각한다. 마블 영화들의 톤이 전부 다 똑같아서, 특색이나 오리지널리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냥 보다 보면 질리고, 이미 물린 지 오래다. 솔직히 똑같은 톤의 영화를 10년 넘게 봐왔는데 질리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지금도 마블 영화가 개봉하면 제일 먼저 극장으로 달려간다(최소한 코로나 시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심지어 <아이언맨>부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그러니까 페이즈 1부터 4까지의 모든 영화를 극장에 가서 관람했다.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고 있는 마블 드라마들도 다 챙겨봤다. 이 정도면 사실 팬이라고 해도 할 말 없을 듯.
뭐 어쨌든 나는 마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마블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매우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고 말해도 손색없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샘 레이미의 삼부작이나,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연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자야 두말할 것 없는 훌륭한 시리즈이고(나는 <스파이더맨 3>도 좋아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또한 훌륭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싫어한다고 말하는 건 마블 스튜디오와 소니가 협업해서 제작한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그러니까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얘기하는 거다. 그 영화들을 재미있냐, 재미없냐로 구분한다면 재밌다고 말할 수 있다. 완성도가 좋냐, 나쁘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좋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들을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영화들에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고유한 내러티브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시리즈의 본질에서 한참 비껴 나 있기 때문이다. 아마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의 첫 등장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였을 거다. 등장부터 얘가 능력을 어떻게 얻었고 하는 이야기는 생략돼서 나오지조차 않는다. 뭐 두 번이나 이미 반복했으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얘는 본인의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토니 스타크가 제작한 나노 슈트를 받아서 입는다. 사실 이 MCU 세계관의 기술적인 수준은 그냥 상식 선에서 한참 벗어난 지 오래라, '토니 스타크가 뭘 만들었어요' 하면 다 그러려니 하고 용납되는 곳이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아이언맨 슈트처럼 나노 입자로 이루어진 최첨단 스파이더맨 슈트를 만들어서 피터 파커에게 준다. 막 뒤에서 거미 같은 팔도 나오고, 거미줄 모드도 몇십 개가 있고, 살상도 가능하단다. 나노 입자가 알아서 움직이며 재생하고, 심지어 전투를 돕는 AI 컴퓨터도 들어있다.
게다가 얘는 기존 시리즈의 피터 파커가 겪었던 고난이나 역경 같은 건 경험해본 적이 없다. 뭐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혼자 설치다가 시민들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하고 토니 스타크한테 슈트 뺏긴 거? 그래서 토니 스타크가 벤 삼촌의 역할을 이어받고 슈트의 힘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장난하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모두 그의 소시민적인 고난과 역경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소매치기 정도나 잡으며 동네 주민들을 도와주다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런 작은 범죄를 눈감아준 대가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슬픔.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재능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무게감. 그런데 영화의 시작부터 스타크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나노 슈트 같은 거나 입으면서, 슈트 해킹해서 능력 주체 못 하고 수많은 사람들 죽음에 몰아넣는 이야기로 이 주제를 이야기한단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도 본질적으로 한참 다르다. 바로 이게 <스파이더맨: 홈커밍>이었고 보면서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 영화에서 남은 거라고는 마이클 키튼의 벌쳐뿐? 혼자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어서 영화에 어우러지지 못하고 따로 겉돈다. 물론 이건 마이클 키튼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영화 자체가 개판이라서 그런 거다.
그래서 그다음 편은 좀 낫냐고? 오히려 더 엉망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스파이더맨의 인생과 피터 파커의 삶 사이에서의 갈등과 그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고뇌를 미스테리오의 환상을 통해서 다루고 있다. 게다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를 또다시, 이번에는 토니 스타크가 넘겨준 안경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걸 빌런에게 넘겨주고, 다시 되찾아온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전부다. 여자 친구에게 정체를 들킨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곁다리. 그놈의 망할 토니 스타크. 마블 영화들은 아이언맨이 없으면 플롯 구상 자체를 못하나?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내러티브 때문에 '책임'이라는 이 시리즈의 주요 키워드가 전부 묻혀버린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그냥 아이언맨 3.5, 3.8 쯤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걸 스파이더맨 영화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한 모욕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귀찮으리만치 현실성에 목맨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의 영화들을 보면, 얘네는 히어로들을 현실적인 층위로 끌어내리는 데에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고 불가능하니까 토니 스타크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인물을 만들어서 그냥 얘가 다 해냈어요 하고 성의 없이 퉁치는 거다. 코믹북은 어디까지나 코믹북이다. 그리고 히어로들은 코믹북 속의 캐릭터다. 뭐 장난감이나 굿즈를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인 측면에서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이해하지만, 어쨌든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다. 히어로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을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지도록 함으로써, 히어로 서사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인 내러티브는 붕괴되고 이들의 얼핏 보면 선한 듯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식들이 현실의 층위에서 등장하게 되는 거다. 신화는 신화로, 우상은 우상으로 남겨둬야만 의미가 있다. 여담이지만 이게 내가 잭 스나이더가 만든 DC 코믹스 영화들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쨌든 MCU의 영화들은 피곤할 정도로 현실성에 집착하고, 더 나아가서 작품의 세계관 속 핍진성(설정)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각본 상에서 영화적인 허용은 거의 없었고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게 MCU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잘 먹히는 요인 중 하나일 거다.
당연히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나리오는 좋은 거고 잘 쓴 각본이다. 하지만 영화의 각본에서 현실성, 핍진성, 서사의 매끄러움보다 중요한 요소는 결국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 테마 그 자체이다. 이게 근본적으로 뒷받침되면서 앞의 요소들이 충족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각본일 거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가 탈락해야 하는 거다. 이야기는 좀 투박하고 어설프게 느껴지더라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고 그게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는 그 영화가 훨씬 더 좋은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주제는 공감이 안되는데 이야기만 매끄럽고 현실적이게 느껴지는, 소위 '왜 찍었는지 모르겠는' 영화였다.
평소보다 논조가 조금 과격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들이 끔찍하게도 싫다. 당연히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 또한 좋아할 수가 없었고(물론 톰 홀랜드는 훌륭한 배우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던 이전 시리즈들의 빌런이 출연한다는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월렘 대포가 분한 <스파이더맨>의 메인 빌런인 그린 고블린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그 영화에서 거울을 마주 보고 이중인격 연기를 혼자서 펼치던 씬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알프레드 몰리나의 닥터 옥토퍼스 또한 좋아하지만, 그린 고블린에 비할 수는 없다. 사실 내가 사랑하던 그 캐릭터들을 이 시리즈에 끌고 온다는 사실이 좀 괘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시리즈를 싫어했으니까. 어쨌든 이 영화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래서 어땠냐고?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사실 나는 부정적인 에너지만 넘치는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영화가 싫었으면 비판한답시고 이렇게까지 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다. 바로 앞의 저 구구절절한 비판들을 보면 설득력 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다 이번 영화가 그만큼 좋았음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다. 아무튼 그렇다.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그 세계관 속의 설정, 서사적인 개연성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이걸 이렇게 넘긴다고? 싶은 요소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그렇게 빌런들을 치료할 수 있는 혈청을 쉽게 만들 수 있었으면 전작들의 그 고생들은 다 뭐가 되는데? 일렉트로는 스파이더맨 정체를 몰랐는데 왜 넘어온 거야? 빌런들이 세계로 넘어온 시점은 정확히 언제쯤이야? 이런 팬들이라면 당연히 들법한 의문점들이 넘쳐흐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답지 않게 플롯도 산만하고 중구난방이고 성의 없이 넘어가는 부분들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 빌런들과의 전투가 끝난 뒤의 결말마저 뜬금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서사적인 짜임새를 희생시키면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의 각본은 매우 훌륭하다. 최소한 두 개의 전작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명작으로 회자되는 샘 레이미의 1, 2편과 놓고 보더라도, 스파이더맨의 주제를 그와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효과적으로 잘 표현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네가 발버둥 치면서 원하는 걸 모두 가지려 해도, 세상은 선택을 강요하는 곳이야
이 영화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애인과 둘도 없는 친구, 그리고 가족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다. 그래서 피터 파커는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상황은 악화되며 피터 파커의 삶, 또는 스파이더맨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강요받는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3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소중한 사람의 상실을 겪는다. 벤 파커의 죽음이 토대가 되지 않은 스파이더맨은 사실 스파이더맨이 아니었다. 엉클 벤이 불쌍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토니 스타크를 벤 파커에 동치 시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어쨌든 이미 벤 파커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관, 이 영화에서, 이제 그 역할은 메이 파커가 대신한다. 메이는 친근하고 따뜻한 숙모였지만 그와 동시에 피터 파커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멘토였다. 비록 이번 영화에서야 처음 드러나긴 하지만, 약자를 돕는 행위의 유의미함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선한 영향력은 피터에게도 닿아, 닥터 스트레인지의 말을 따르며 빌런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어벤져스의 일원 '스파이더맨'으로서가 아니라, 메이 파커의 선한 영향력이 작용한 '피터 파커'로서의 선택을 행한다. 그 결과, 메이 파커는 피터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등장한다. 장면의 애절함과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들하고는 별개로, 드디어 이 영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리고 이런 짓을 벌인 빌런은 바로 스파이더맨의 평생의 숙적이자 똑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 그린 고블린(노먼 오스본)이다. 단순히 치매에 걸린 것 같은 힘없는 늙은 노인으로 등장해, 피터와 메이의 선한 심성을 이용하고, 그 결과 죽음과 좌절로 몰아넣는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처럼, 영화 속의 문제들은 모두 두 개의 삶을 전부 누리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린 고블린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선택할 필요가 없다며, 피터에게 너는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나약하기 때문에(선하기 때문에)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며 조롱한다. 월렘 대포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본연의 서사에 의해, 이번 영화의 빌런은 누구보다 볼품없는 스케일임에도 압도적인 공포감과 설득력을 부여하며, 이야기 속에서 피터 파커가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작용한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분한 이전 스파이더맨들도 등장하고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의 훌륭한 멘토 또는 동료가 되어주지만, 사실 이들의 등장은 어디까지나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에 그칠 뿐이고 피터 파커의 성장 서사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린 고블린을 제외한 수많은 빌런들 또한 이러한 성장을 위한 발판에 불과하고 너무하리만치 성의 없이 퇴장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전 작들의 등장인물의 출연보다 중요한 것은 결말부에서 피터 파커의 선택이다. 온갖 멀티버스에서 넘어오는 빌런들을 막기 위해서, 피터 파커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방안을 선택한다. 이 시점에서 메이 파커의 선한 영향력, 그리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정신을 이어받은 피터 파커의 본성은, 이미 스파이더맨에게 그대로 이어져 있다. 피터 파커의 삶을 포기하고 스파이더맨으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 결과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둘도 없는 친구, 아버지 같던 조력자와 수많은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진다. 기억이 사라진 MJ와 다시 마주하는 씬에서, 피터 파커는 자신을 알리기를 포기한다. 이제 피터 파커는 작은 월세방에서 집세를 독촉하는 집주인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토니 스타크의 나노 슈트가 아닌 본인이 직접 손수 제작한 슈트를 입고, 뉴욕의 상공을 활강한다. 피터는 이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비로소 자신이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아이언맨의 유산을 내버리고 이전에 자신을 알던 모든 인물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며 작은 월세방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을 통해, 비로소 피터 파커는 단순한 아이언맨의 후계자이자 어벤져스의 일원에서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시작이다.
나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뒤에는 아마도 생략된 한 문장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동(또는 선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