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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Sep 05. 2023

죄도 없는데 유배당했다.

시골 소방관입니다.


소방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모습인가?  
아마도 불을 끄는 모습?
불 끄고 나서 컵라면 먹는 그런 안타까운 이미지?


보통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불을 끄는 것이 소방관의 주 업무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불이 나면 불을 끄는 화재진압대원, 불속으로 뛰어들어가 사람을 구출하는 구조대원,

구조대원이 구조해 온 환자를 응급처치 및 병원까지 이송하는 구급대원으로 나뉜다.     


나는 작년에 합격해서 이제 막 첫 발령지로 OO소방서를 명 받은 구급대원 소방사 시보이다.

OO이라는 지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OO은 총 맞은 기분이었다.  

교육받는 소방학교 학생들 사이에서의 OO이라는 지역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유배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OO은 시골섬이기에 거리상으로 멀어서 출퇴근이 괴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지망하는 사람이 적고

결국, 음주운전, 범죄 등 사고를 쳐서 징계성 인사로 오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했다.(사실 여부는 모른다)

오죽하면 소방학교에서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넌 OO으로 발령 나겠구나”

하는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학교에 있을 당시 나는 초임 소방관으로서 아주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구급출동이 가장 많아서 힘들다고 악명 높은 ㅁㅁ를 내 1 지망으로 적어서 제출했다.

다른 의미로 모두가 기피하는 곳이었고

동기들은 내가 대가 대신 폭탄 하나를 안은 것에 대해서 다들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모두가 내가 ㅁㅁ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믿고 있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누군가 내 머리에다 총알을 박아버렸다.      


 띠링!!!


 안녕하십니까!? OO소방서 소방행정과 아무개입니다.
우선 저희 서로 오셔서 같이 일하게 돼서 반갑습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1주일간 넋이 있다가 없다가 했다.
미친놈같이 실실거리기도 했고,
어디로 향할 수도 없는 분노가 그냥 내 안에서 발산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신입소방관들이 소방서센터에 왔지만 모두 본인의 일이 바빠서 우리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앉아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교육을 하는 사람도 위에서 내린 지침이니 어쩔 수 없이 교육을 하고 우리는 그러한 의지 없는 수업을

졸지도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계속 듣고 있었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앉아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끝나고 퇴근하면 술 한잔 못 할 만큼 다들 기진맥진했다.

그만큼 긴장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실습이 하루하루 진행되던 어느 날 하염없이 대기하는

우리를 보다 못한 팀장님께서 모두 데리고 야외교육을 친히 하시게 되었다.

소방서 근처 큰 공용주차장에서 소방펌프차 운전교육을 해주셨다.

소방학교에서도 소방차 교육을 받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와 내부에는 여러 가지 조작 버튼이 많은 소방차 운전석에 앉으면

스스로 뭔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소위 말하는 뽕이 차오른 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표현이 조금 경박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표현 같다.     

신입들이 돌아가면서 소방차를 몰고 넓고 텅텅 빈 주차장을 종횡무진 달리기도 하고

차체가 거대한 만큼 주차가 어렵기에 주차 연습도 여러 번 하면서

다들 여유가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가장 생기 있는 실습시간이지 않았었나 싶다.

여러 차례 순번이 돌고 차량 운전이 익숙해지자

야외에 임시로 쳐놓은 텐트 안의 의자에 앉아서 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오후 3시의 뜨거운 햇볕아래 우리는 만인이 평등하게 사다리 타기로 아이스크림 내기를 했고,

다행히도 내가 아이스크림값을 지불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낮의 아스팔트 위의 더위속에서 팀장님은 양쪽 바지를 말아 올리고,

목을 조이는 상의의 지퍼를 내려서 목에 여유를 두셨다.

그리고서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팥빙수를 적당히 녹인 다음에 떠서 드셨고,

우리도 각자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팀장님의 너무도 동네 아저씨한 vibe에  실습하고서

계속 경직되어 있던 우리들은 이제 막 나온 가래떡 마냥 말랑말랑해졌다.      


OO소방서는 최근에 개청 했다.
그렇기에 청사도 크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장비들도 모두 고가의 새장비들이다.
원하지 않는 곳에 배정받은 나는 속에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고 이 소방서도 부정적으로 보였다.
이런 시골 섬에 출동도 많지 않은 곳에 최첨단 장비와 큰 소방서가 있는 건 소방력 낭비는 아닌가?
여기에 이렇게 많은 세금을 들이는 게 맞나? 하는 의문비슷한 분노가 며칠간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해 줄 사람이 앞에 있었고 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편안한 분위기에 힘입어 팀장님께 한마디 던졌다.     

 

저 팀장님,



내 한마디에 팥빙수 아이스크림을 떠먹으시던 팀장님께서 움직이던 숟가락을 멈추시고

자세를 내 쪽으로 향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려는 그 움직임에 용기가 생겼다.


팀장님 이런 시골 섬에 이렇게 큰 소방서,
비싼 소방장비들이 있는데 우리 소방서가 갖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만약 사장이면 이런 OO소방서 같은 기업은 그냥 없애브러야지
솔직히 출동이 적고 회사로 치자면 실적이 나쁜 편이니.
근디 그것이 다가 아니자너 일 년에 100억씩 들여서 한 사람이라도 구하면 그건 다르지 않나?”
 "거기에 의미가 있지 않나?"     

 


도서지역도 분명 적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가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의료나 안전, 치안에 대해서 도시지역에 비해 평등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부끄럽게도 사람이 적으니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낭비가 아닌가 하는

두고두고 이불 킥하게 만드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팀장님의 시원한 말씀에, 그동안 품고 있던 부정적인 의문과 내 안에서 끊임없이 연소하는 분노,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된 억울함이 하얀 수증기와 재만 남기고 식어가고 있었다.

차가워진 머리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도 반성하게 되었다.

시골소방서는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이곳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리가 없어서 배로 이동해야 하는 섬도 있고

의료도 부족하고 길도 좋지 않다.

하지만 이곳도 도시지역에 비해 적지만 매일 출동이 있다.

사건 사고가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매일 있다.

단지 타 지역과 비교해서 적을 뿐이지, 적다고 해서 평등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다.     

 대도시에는 대도시 소방의 역할이 있고 시골소방은 시골소방의 역할이 있다.

시골이라 해서 그 일의 가치나 의미도 소박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의미가 있지 않나? “


그렇다!

팀장님 말씀처럼 사람을 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을,

내가 원하는 곳에 발령받지 못했다고 분노에 휩싸여서 어린아이처럼 투덜대고 있었다.

팀장님 덕분에 투덜거리던 어린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처음의 열정을 가진 신입 소방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나는 OO소방서에서 내가 가진 역량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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