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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May 19. 2021

심리상담 이야기 4-2. 좋은 사람

실은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2)

 스물셋, 넷이었을 대학생 때 잠실의 한 영어학원에서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주말에만 하는 파트타임이었는데 정규수업은 원장님이 하시고, 나는 아이들 자습을 감독하거나 필요할 경우 보충수업을 맡아 실제 수업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다닐 때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긴했지만 1년을 꽉 채워서 한 아르바이트는 이 영어학원에서의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으로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학교 안팎에서나 집 안팎에서나 자신감이 없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 중엔 소위 말하는 명문대생들이 많았다. 흔히 입시준비 학원은, 특히 학생들에게 직접 수업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경우엔 고 나이대의 아이들이 흠모하는 학교 출신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나는 여기에 어떻게 끼게 된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잘나가는 학교 출신의 또래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를 얘기해야되는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든 막고싶을 지경이었다. 당시 수업을 맡았던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내가 으레 S대 출신일 거라 믿고 있었고 그 말을 들을때마다 그냥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집안꼴도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싸워댔다. 어렸을 땐 그래도 내가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가 더이상 싸우지 않을거라는 다소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 절망감을 어떻게 분출은 못하고 오롯이 꾹꾹 눌러담고 있던 탓인지 1년 정도 약을 먹고 잠잠해졌던 류마티스 관절염이 재발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자리에 앉고나서 한 5분 정도가 지나면 온 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 관절이 굳으면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서이다. 그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헛구역질이 났고 겨우 몸을 일으켜 중간중간 내려서 몸을 풀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야만 겨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와 싸우다 싸우다 당시 서울 근교에 차렸던 (결국엔 2년여 만에 망하게 될)식당에서 생활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나갔고 엄마는 매일같이 집에서 그 울분을 토해냈다. 아빠가 나가있는 동안 엄마는 여전히 나를 붙들고 아빠 욕을 했다. 장마철이면 안방 천장에서 물이 새서 우리 세 모녀는 힘을 합쳐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집안 곳곳에 온갖 대야를 두고 강아지가 그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항상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온 집이 습한 탓인지 바퀴벌레가 여기저기 들끓었다.


 어느 날은 학원에서 일을 하는데 큰이모한테 전화가 왔다. 나중에 받자, 하고 핸드폰을 뒤집어놨는데 자꾸 전화가 울렸다. 결국 조용히 밖에 나가서 받았는데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술을 먹고 집을 나갔는데 어디갔는지 짐작가는데가 있냐는 전화였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할 정도로 막막한 질문이었다. 그걸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 당장 수업을 해야하는데 중간에 뛰쳐나갈 수도 없고, 술에 취해 집을 나간 엄마가 혹시 어디가서 죽지나 않았을까, 이모는 왜 경찰에 신고부터 안하고 밖에 나와있는 나한테 전화를 한 건지 너무 야속했다. 전화를 받고 대략 다섯 시간 정도 후에 퇴근이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퇴근시간이되자마자 울면서 건물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어 버스는 도무지 못탈 것 같아서였다. 택시 안에서 꺼이꺼이 넋을 놓고 울었다. 그때의 두려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하면 누군가 엄마가 결국 죽었다는 말을 해줄 것만 같았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울음을 최대한 삼켜내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목구멍 끝에서 더 괴기한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죽지않고 살아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납득이 갈만한 설명은 생략된 채로 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이어나갔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당연히 없었다. 그 사건을 겪고나서 내가 궁극적으로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마치 영겁의 세월동안 풍화되고 또 풍화된 어떤 돌덩이 깊숙한 곳에서 사금이라는 결정체가 나오는 것처럼 모든 절망과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함의 껍질이 날아가고 그 사이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던 외로움이라는 궁극적인 알맹이가 채취된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외로움...


 당시는 그런 상황이었다. 감사하게도 원장, 부원장 선생님 두분이 나를 참 많이 아껴주시고 믿어주셨다.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위해 1년 간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게 되었을 때는 영어선생님으로의 커리어를 시작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제안해 주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상담선생님이 누군가 나를 전적으로 믿어준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생각났던 사람이 이 두 분이다. 학원에서의 마지막 일과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자하여 셋이서 근처 식당으로 갔는데 음식이 나오기 전 부원장님이 나를 지그시 보더니 이렇게 말해주셨다.

 "OO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셨던 걸까. 숨기려고 해도 감출 수 없이 삐져나온 내 슬픔을 읽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셨던 것일까?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서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었는지 기억이 난다. 성격 더럽다, 싸가지없다 같은 말만 들어왔던 내게는 너무 생소한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 말이 그토록 듣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부원장님은 왜 OO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그냥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서요..?"

 "맡을 일을 성실하게 하셨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실하게 하셨나요?"

 "그냥...내가 아는 지식을 그걸 모르는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하니까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수업 전에 생각하고 가고...그 정도요."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니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셨군요. 일 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세네요. 또 OO씨라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떤 장점이 있었길래 원장, 부원장님이 그렇게 신뢰를 하셨을까요?"

 "그냥 아이들이 저를 잘 따르고 해서...학원 입장에선 그게 중요하니까 그러셨던거 같아요."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통솔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들이 OO선생님을 잘 따랐네요. 어떻게 아이들이 OO씨를 잘 따르게 됐을까요?"

 "...그냥 얘기를 잘 들어줬던 거 같아요."

 "어떻게 잘 들어주셨나요?"

 "그냥...애들은 하고싶은 얘기가 정말 많아요. 근데 그걸 들어줄 사람이 부족한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공부 얘기만 하기보다는 애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친구들 사이의 고민, 취미생활 같은 자기들이 하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물어봐주고 하긴 했어요. 그래야 공부 가르치기도 수월해질 거 같아서요."


 상담 선생님께 말하다보니 내가 아이들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학원에서 만나게 된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하고싶은 얘기가 무지하게 많았다. 어느 날은 수업 전에 내가 칠판 앞에 서서 수업자료를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7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나한테 한꺼번에 해서 헛웃음을 지었던 적도 있다. 모두 중학교 여자아이들이었는데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엄마한테 말하기 미안하다는 아이, 며칠 전에 보고 온 겨울왕국 주제가가 너무 좋아서 인생곡이 됐는데 꼭 들어보시라는 아이, 학교 선생님이 화장하지 말라고 화장품을 다 뺏어갔다고 어떡하냐는 아이 등등...


 고2가 되는 여자아이 둘과 겨울방학 때 문법 수업을 진행했는데 두 친구 중 한 아이가 한때 절친이었던 남자아이와의 열애와 급작스러운 이별로 고민이 많았을 때였다. 나도 고등학교 때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 때문에 가족들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던 얘기며 학교에서 마주치면 태연하게 다른 길로 꺾어 들어가는 방법같은 얘기를 하며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얘기했던 기억도 났다.


 어떤 고1 남자아이는 체스를 두는 게 취미여서 부모님 몰래 체스대회 같은 걸 나갈 정도로 열정이 있는 아이였는데 자기만의 체스 철학을 틈만 나면 나를 붙들고 얘기했다. 구체적인 건 뭔 얘기인지 당최 모르겠어서 대충 들어주었다. 체스 좋아하는 거 부모님이 아시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은 아시긴 하는데 공부나 하라고 했단다. 그 당시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던 나는 어린 나이에 그런 취미를 갖고 있는 아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공부하느라 체스 둘 시간이 많이 없겠지만 취미가 있다는 건 진짜 멋진 일인 것 같다고, 나중에 대학 가서도 체스를 놓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 점이 아이들에게는 나를 잘 따르게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일까? 어느 날은 부원장님이 전에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새로 바뀐 선생님 말고 예전처럼 나한테 수업을 받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나를 잘 따라줬고 나는 외부에서 받은 온갖 상처를 아이들 얘기를 들어주면서 잠시 잊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당시엔 개인적으로 상황이 너무 힘들 때라 아이들이 하는 모든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지는 못했다. 어떤 날은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누워있고 싶은데 우거지상을 하고 겨우 출근해서 죄없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고 별 거 아닌 일에도 호통을 쳤다. 그래서 학원에서 보낸 일년도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부원장님이 내게 해줬던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에서 시작된 나의 스물 네 살의 기억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었다.


 "OO씨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네요. 보통 사람들은 어떤가요, 자기 하고싶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가요?"

 "보통은 들어주기보다 말을 많이 하죠."

 "그렇죠. 그런데 OO씨는 다른 사람 얘기를 그냥 형식적으로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닌 것 같네요."

 "상대가 얘기할 때 아,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질문을 하는 거 같아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가면서 얘기를 들어주네요. 그건 정말 대단한 장점 아닌가요? 그리고 그 힘든 상황에서 OO씨는 내 나름대로 정말 최선을 다하며 살았네요."

 

 눈물샘은 마를 기미없이 하염없이 터져버렸다. 스물 네 살의 나에게 참 잘하고 있다고, 애쓴다고, 많이 외로웠겠다고 말해주라고 했다. 입만 벙긋거리고 차마 부끄러워 못하겠는데 그걸 해야 상담이 끝날 거 같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OO아, 참 고생이 많다. 힘들고 외롭지. 잘 하고 있어."


 이번 상담에서 얻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모두 다 망한 거 같아 건져올릴 게 하나도 없을 거 같았던 내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나름의 가치를 찾았다는 것. 그래, 나는 그 지옥같은 순간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나름대로 진짜 최선을 다했구나. 스물 네 살이면 그래도 어린 나이인데 어엿하게 잘 하고 있었구나...멍청하게 몸이나 아프고 친구도 없고 스펙도 없는, 귀하디 귀한 젊음을 맹하니 흘려보낸 한심한 인간이라 스스로 비하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꼭 어떤 의미있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이 새삼 대견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는 나한테 질문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야기를 하는  매우 낯선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엄마아빠의 얘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주로 했고  얘기를 집에와서 일절 하지 않았다. 해봐야 부정당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년을 살다보니  하는  습관이 되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다.  이야기라고 해봤자 우울한 얘기뿐이니 차라리 남의 얘기를 듣는게 속편하다는 심정으로 들어주었던 것인데, 남자친구에게만큼은 제발  얘기도  들어줘, 라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 말을  못할 뿐인데 남자친구는 물어보지 않아도 얘기하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결국 내 자신이 문제라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상담선생님이 주신 솔루션은 이것이다.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나는 옛날부터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거에 익숙해있었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막상 얘기하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나도 자기처럼 하고싶은 얘기 있으면 막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그래서 자기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자기랑 얘기하는 게 좀 더 편해질 거 같아."


 대화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훈련받는 느낌이지만 다행히 이 제안은 잘 받아들여졌다. 이제 내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조잘조잘 얘기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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