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Baek 백산 May 15. 2023

Stanford MBA 졸업 후 10년_(2)

화려한 학벌과 커리어의 뒷면에 꼭꼭 숨은 이야기들

MBA졸업 10주년 동문회, 두 번째 이야기이다.


동문회란 게 다 그럴 수 있듯이 스탠퍼드 MBA의 동문회도 기대와 걱정을 동반한다. 다들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성공한 동기들에 비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까 걱정한다. 마치 링크딘/소셜미디어를 접할 때 주위의 성공에 위축되듯이. 우리의 만남은 링크딘의 오프라인 버전일 것인가. 나도 걱정했다. 동문회를 다녀온 후 나는 어떤 마음상태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건 전혀 링크딘의 오프라인 판이 아니었다. 그랬던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 더 영성 수련회, 힐링캠프에 가까웠다. 아래 나눠본다.


친구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망설여지는 주제는??


삶의 만족도 조사의 일환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대답을 보면 재밌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맞벌이 부부의 일가정 양립

커리어 발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언제 달리기를 멈추고 살기를 시작할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데 익숙한 연로한 부모님 상대하기

커리어에서 느끼는 실망 매 니지 하기

돈 걱정

창업하는 것 vs 수입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

가족 건강 문제 - 암과 싸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다른 사람들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력에 환멸을 느끼는 동기가 있는지. 내 경력에 흥미를 잃고 환멸을 느끼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확실하지 않음 내 경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체된 것 같은 느낌

아이와 함께라도 로맨틱한 파트너와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

삶의 목적 찾기.

더 많은 균형을 위한 두 번째 경력 옵션.

아이를 낳은 후의 성생활

사회적 불안 - 까다롭고 가시성이 높은 직업에 대처하는 방법

구체적인 재정적 목표와 재정적 자유를 보는 방식

기업가 정신의 성공과 실패

자녀양육을 위해 커리어를 내려놓은 경험담

세계에서 가장 특권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인 우리가 계속해서 불평등에 기여하는 정도.

직업과 삶의 질 사이의 트레이드오프

우울증과 불안을 관리하는 색다른 방법


실제로 난 "삶의 어려움을 대처하는 법"이란 주제로 나누는 소그룹에 조인해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방에서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겉으론 너무나 성공한 것 같고 화려하게 살고 있는 동기들이 아래와 같은 어려움을 나눴다.


"내가 이인자로 있었던 회사가 계속 성공하고 나자, 난 직접 창업을 할 자신이 생겼어. 그리고 창업했고 투자자들도 나를 믿어줘서 자금도 많이 모았지. 근데 이인자일 때와 창업가일 때가 이렇게 다를 줄 몰랐어. 사실 난 지금 어떻게 회사를 끌고 나갈지 모르겠어. 실패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도 못 자.  투자자들이 나한테 - 넌 이인자가 잘 어울려. 네가 직접 리딩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는 악몽을 종종 꿔. 나도 나를 못 믿겠어. 어쩔 줄을 모르겠어. "

"러시아에서 가족과 커리어를 잘 꾸려가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고 갈수록 사회가 극단으로 가는 게 느껴져서 미국으로 건너왔어. 어떻게 어떻게 적응해서 취직해서 살고 있는데 사실 맘이 너무 어려웠어. 커리어가 몇 단계는 내려왔거든. 그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야. 왜 내게 이런 일이...."

"최근에 직장에서 잘렸어.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지. 인생의 실패자가 된 기분이야. 사실 내가 동기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어"

"남편과 관계가 너무 안 좋아. 상담도 받고 해 보는데 너무 어렵네"

"난 사실 한 번도 사람을 제대로 믿어본 적이 없어. 그래서인지 조직생활을 한 번도 적응 못했어. 지금도 혼자 일하고 있어"

한 바퀴 돌며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자 갑자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우는데 갑자기 눈물바다가 됐다. 그렇게 쏟아놓고 보니 맘이 뻥 뚫리는 게 느껴졌다. 힐링캠프가 따로 없었다.


소그룹을 마치고 다 같이 모인 강당에서 총 여섯 명의 친구들이 앞에 나와서 자신의 삶을 나눴다 (우리 MBA의 전통 "Talk - 과거 이글 참고"). 그중 한 명은 남에게 잘하지 않는 열 가지 이야기 란 주제로 나눴다. 아래 10개 중 몇 개를 소개한다. 이야기가 너무 직설적이고 거침없어서 살짝 폭탄이라도 맞은 느낌이었다.

친한 친구가 거의 없고 친구를 사귀기 어려움

회사의 CPO (chief product officer)로서 커리어골을 이루었는데 사실 Chief 중역의 자리는 정말 힘들고 외로움

난 사실 코비드 백신을 안 맞았음

난 사실 민주당 지지자가 아님

난 사실 집에서 애들 보는 삶을 꿈꿈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엄마가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음

내 삶의 만족도는 7점 만점에 7점임


사실 가장 놀라운 일은 동문회가 다 끝나고 나서 일어났다. 동기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사람 중 하나로 여겼던, 실리콘밸리의 메인 벤처캐피털에서 오래 일했고 아주 옛날부터 벤처투자를 해왔던 친구랑 동문회에서 마주쳤는데 얘가 나랑 따로 커피를 먹자고 제안했다. 그리 친했던 애도 아닌데 이 잘난애가 왜 나와 커피를 먹자고 할까 의안 했는데 만나서 나누며 알게 된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대략 이런 식이 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점점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 나의 인테그리티 (Integrity)가 타협해 가는 걸 느꼈는데 난 그걸 막을 용기를 내지 못했어. 부모님과의 관계도 친구와의 관계도 점차 단절되어 갔지. 이 관계가 뭔가 맞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그걸 중단할 용기를 내지 못했어. 난 갈등을 싫어했고 피했거든.

그러다가, 오히려 아들을 낳고 나서 아들을 보고 용기를 내야겠다고 결심했어. 더 이상 삶이 점차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걸 방관할 수 없었지. 그래서 관계를 끝내고 이혼했어.

사실 자살할 결심까지 했었어. 그 당시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고 머릿속엔 삶을 마감하라는 소리만 울려 퍼졌지.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 그 소리는 - 제대로 표현할 수 없지만 - 내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어. 그 희망의 소리를 그날 이후에 붙들었어. 본능적으로 붙들어야 한다고 느꼈어. 그때 이후 자살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최근에 평생 꿈으로 여겼던 그 벤처캐피털에 파트너로 조인하는 걸 접어야 하는 일이 생겼어. 커리어에서 마저 실패했단 생각에 다시 좌절감이 몰려왔지. 그래도 힘을 내보려 하고 있어.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신이 누구인지 알고 나의 신앙과 영성을 잡는 거야. 그게 없어서 너무 흔들렸던 것 같아. 이젠 그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아, 실리콘밸리의 한가운데 있는, 가장 화려해 보이는 내 동기들의 삶에도, 이런 공허함과 어려움이 있구나. 우린 다들 각자 분량의 아픔을 앉고 살아가는구나. 친구의 아픔을 듣고 같이 공감하고 울고 웃고 하니 30분 만나기로 했었는데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MBA10주년 동문회는 5주년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아이덴티티의 대부분이 커리어였던 5년 전의 우리와는 달리, 이젠 각자 삶에서 여러 아픔도 겪고 그걸 인정하고 나누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런 문화를, 모습을 보여준 동기들에게 많이 감사하다. 앞으로 5년, 10년, 15년, 20년 후 우리는 또 어떻게 만나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보듬으며 용기를 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