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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19. 2019

알아두면 평생 써먹는 퇴직연금 제대로 쌈싸먹는 방법 1

왜죠? 왜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하는거죠? + 안내

얼마 전 파산한 기업에 담보물건을 확보하러 갔던 한 은행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은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였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분노하여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공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눈치가 없었던 그 은행원은 정장을 입고 은행 배지를 착용한 채로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담보물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동차에서 내려 공장에 진입하는 순간 쇠파이프에 맞아 죽을 뻔했다.


배당 순위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기업이 파산하고 청산에 들어갔을 때 누가 먼저 자신의 몫을 가져가는지에 대하여 매우 정교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법이 노동자의 퇴직금을 보호해주는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이만큼의 기간에 대한 퇴직금은 노동자들이 최우선의 배당순위를 갖게 된다.



법원은 파산한 기업의 공장과 지게차 같은 것을 경매로 처분하고 이 돈으로 3년 치의 퇴직금을 가장 먼저 배당한다. 문제는 3년을 초과하는 기간에 대한 퇴직금이다. 3년 치 퇴직금을 지급하고 남은 돈은 그 다음으로 당해 국세/지방세를 메꾸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남은 돈은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은행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고 나서도 혹시 남은 돈이 있다면 그때야 노동자들은 자신의 몫을 배당받을 수 있을 테지만 -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돈이 남아서 여기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자산이 빵빵한 기업은 애초에 파산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련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퇴직금까지 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분노하여 붉은 머리띠를 메고 공장을 점유하였다고 했을 때 - 누가 그 노동자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점유는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은 냉정한 경매와 배당의 진행이다. 기업이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퇴직금까지 떼이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여기서 퇴직연금과 퇴직금제도의 차이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가 퇴직을 했을 때 지급해야 할 재원을 기업이 어디에 적립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주어야 할 만큼의 돈을 회사 외부에(대부분은 금융기관의 신탁계정)에 적립해둔다. 이 경우 회사가 망해도 소속 노동자들은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반면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언젠가 지급해야 할 퇴직금 추산액을 따로 모아 적립해 놓지는 않는다. 기업의 회계담당자는 장부에 "나중에 직원들 퇴사하면 줘야햐는 부채가 이만큼 있습니다."라고 적어놓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자산에 "이 돈은 나중에 직원들 퇴사하면 줘야 하는 돈이니 손대지 마세요."라고 못밖아 놓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기업은 아무런 제약 없이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돈을 경비로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퇴직연금과 퇴직금 이 두 제도가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퇴직금: 회사가 망하면 노동자는 퇴직금을 못 받을 수 있다.
퇴직연금: 회사가 망해도 노동자가 퇴직금을 받을 가능성이 꽤 높다.




2017년 기준으로 퇴직연금 도입 대상 사업장 126만 개 중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은 34만 개에 지나지 않는다. 도입률로 따지면 27.2%에 불과하다. 왜 이토록 많은 기업들이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자금이 묶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수수료가 나가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제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입법부의 의지에 거스르는 행정의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가능하고 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퇴직연금이라는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할 노동자들이 퇴직연금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기업의 노동자 중 대다수는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이 퇴직금 제도와 퇴직연금 제도 중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통계청 2017년 하반기 및 연간 퇴직연금 통계 중 발췌


이것은 조금 웃긴 상황이다. 왜냐하면 어떤 기업이 자금이 묶이는 것이나 수수료 때문에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망설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 기업이 재무여력이 열위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무여력이 열위하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파산이라는 사건에 취약하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퇴직연금이 도입된 가장 큰 취지는 그런 취약한 지점에 놓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그 취약점에 있는 노동자들이 보호를 받지를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간 크게 사장님에게 우리도 퇴직연금 도입해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임금 노동자라면 최소한 퇴직연금 제도가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알고 있어야 지식이 의지가 되어 표출 될 수 있다. 표출된 의지는 누적이 된다. 그래야 어느 시점이고 기업에 잉여자원이 발생했을때 그것이 퇴직연금 제도의 도입에 사용될 계기가 되는 것이다.

종사자 규모별 퇴직연금 도입률: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도입률이 낮다. 자료출처 상동

퇴직연금은 노동자에게만 득이 되는 제도가 아니다.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가장 먼저 세금 혜택이 있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재원을 적립하면 그만큼이 손금산입 된다. 손금산입이란 기업이 받는 연말정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업은 퇴직연금 계정에 돈을 넣는 것에 비례하여 법인세가 줄어든다. 금액의 제한도 없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노동자가 퇴직해서 퇴직금을 지급하면 그만큼이 손금산입 되기 때문이다. 조삼모사다. 전체적인 기간을 놓고 보면 세금 발생 금액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은 당장 올해 발생할 세금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 몇 년 후일지 모를 개별 노동자들의 퇴직연도에 귀속될 세금 절감액을 떼어와 올해 세후 이익을 늘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5년이나 10년 후 내 후임자 임기에 인식될 세금 절감액을 떼어와 올해 내 임기 동안 끌어다 사용해서 내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윗목의 돌을 빼서 아랫목 괴는 형국이지만 - 뭐 다들 오늘 하루 사는 거 아닌가? 최말단 사원이나 최상위 경영자나 말이다. 게다가 이런 재무활동은 꼼수도 탈세도 뭣도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무사와 회계사는 이 방식이 더 정당하고 회계 목적에 부합한 경영방식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게다가 때때로 기업은 일회성 수익이라는 잭팟을 맞기도 한다. 이 경우 수익이 많이 나서 행복하지만 동일하게 법인세가 증가한다. 이때 세금을 절감하기 위해 미래의 세금 절감액을 떼어와 올해 사용하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옵션이다. 사랑스러운 종업원들에게 어차피 언젠가 지급해야만 하는 퇴직금을 미리 적립하는 대가로 내 살 떼어가는 것처럼 아픈 법인세를 아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업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 약소하지만 모두를 위해 우리도 퇴직연금 제도란 것을 도입했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할까?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꼭 문자를 보내도록 하자.


두 번째로는 임금 상승이 가파른 기업의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다. 최근 최저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저임금 기업에서는 선제적으로 DC를 도입하는 것이 많이 유리해졌다. 퇴직금 제도와 DB는 퇴직금이 노동자의 은퇴 시점의 급여에 비례하여 지급된다. 반면 DC는 현재의 급여에 비례하여 퇴직연금 재원을 납입하게 된다. 때문에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직원이 많은 기업의 경우 빠르게 DC로 전환을 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퇴직급여를 절약할 수 있다. 최저임금 적용업체뿐만 아니다. 신생업체이나 성장산업처럼 어떤 사유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DC를 도입해서 미래의 퇴직 임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퇴직연금 도입을 통해 대출 금리를 할인받을 수도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재무팀에서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꿀 것이니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해서 점심시간 이전에 제출하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꽤 자주 일어나는 것은 퇴직연금과 패키지로 대출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은 퇴직연금을 도입함으로써 대출이자를 절감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통상 더 낮은 대출 금리를 적용받는다. 거액 대출 취급의 후행 조건이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가지고 있는 퇴직연금을 모두 이전해오는 것인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모든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가 퇴직연금 잔액 증대를 위한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면 기업은 퇴직연금을 통해서 더 낮은 대출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기업이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혜택은 단 하나의 제약에 의해 무력화된다. 기업의 자금이 묶이는 것이다. 기업에게 있어서 자금은 말 그대로 피와도 같다. 자금이 없는 기업은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그만큼의 자금이 묶여서 기업의 성장에 사용할 수 없다. 급격한 대외 변수와 경쟁에 그만큼 취약해진다.


퇴직연금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가뜩이나 자금 사정으로 어려운 기업이 직원들의 퇴직금 재원을 미리 묶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한번 묶어놓으면 다시 꺼내거나 돌려받아 쓸 수 없다. 이에 더해 기업은 매년 퇴직연금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많은 기업들이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꽤 많은 기업들이 퇴직연금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정도다. 그 기업은 어떤 이유에서건 직원의 복지- 퇴직금 재원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가 적절히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장 한심한 부분은 퇴직연금 적립액의 88.1%가 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 특히 DC형에 납입된 재원은 그 속성상 매우 강한 손실 내구도를 가진다. 은퇴시점까지 중도인출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은퇴시점까지 강제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이상 매월 자동적으로 추가 납입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단단한 자금이 주식 같은 자산군이 아니라 윈리금보장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포르셰로 논밭을 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DB의 경우는 별로 상관이 없다. DB의 경우 퇴직연금 재원에서 발생한 수익과 손실이 고용주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DC와 IRP다. 이 두 제도로 운영되는 퇴직연금은 수익과 손실이 모두 노동자에게 귀속된다. 만약 이직을 하거나 중도인출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앞으로 10~30년은 퇴직연금라는 시스템 안에서 재테크를 해야 한다. 이 기간은 짧은 기간이 아니다. 복리라는 현상이 힘을 쓰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퇴직연금 수익률/ 투자기간에 따른 미래가치


위의 표는 연간 퇴직연금 적립액 400만 원을 가정했을 때 수익률에 따른 미래가치를 요약한 표다. 20년의 근속기간을 가정하고 수익률 2%, 5%를 비교했을 때 미래가치는 3,500만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2% 투자수익률 9,719만 원 VS 5% 투자수익률 13,226만 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더 급격히 커지게 된다. 앞으로 100살을 그것도 매우 건강하게 살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 그렇게 되면 퇴직연금 운용기간이 20년이 아니라 45년이 될지도 모른다. 이때의 미래가치 차이는 2배 이상이다. 그러므로 투자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10% 넘는 고수익을 노리라는 것이 아니다. 감수할 수 있는 수준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4~6%정도의 수익률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리금보장 상품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결국 퇴직연금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4~6% 정도로 장기수익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퇴직연금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시기 때문이다.




얼마전 브런치북에 대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과거 저는 예금과 금융이론, 펀드에 대한 포스팅을 많이 했었는데요. 이것들을 다시 묶어서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기에 구독자가 없을때 등재된 콘텐츠들이다보니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고(조회수가 200도 안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내용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브런치 북으로 만들려고 하니 여기저기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그대로 진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과거 콘텐츠들을 브런치북에 알맞은 형태로 작업하여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멋있게 브런치북을 만들고 싶어서요.


예금 적금 좋아하시나요? 저는 슈퍼울트라 초특급 프로 적금러입니다. 은행원이고요. 다음 포스팅부터는 저의 모든 노하우를 담아 예금과 적금에 대한 과거 포스팅을 조금 더 볼만하게 작업해서 올려보겠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퇴직연금 다음 이야기는 한동안 미뤄둬야 할것 같습니다.


본 콘텐츠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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