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생존자 에세이 첫 출간 소회문

에세이집 <<우리가 세상에 적은 문장들>> 출간기념

by 성원

5시간 만에 어찌저찌 책을 내게 되었다.

Project CHVR (@chovivor) - 마지막 작가


블로그 이웃 초바이버님이 암경험자 공동 에세이집을 발간 예정이라는 글을 보고 써둔 글도 없으면서 일단 '참여하겠다!' 선언을 한 결과였다. 기한은 29시간, 그마저도 중간에 만두를 먹고 배탈이 나 실제로 글을 쓸 시간은 5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는 충동적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는 편인데, '작가'라는 타이틀에 눈이 멀어 눈에 뵈는 것 없이 썼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쓴 글이라 다시 봐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래도 쓰고 싶은 내용을 드디어 쓸 수 있어 후련했고, 아직은 책보다는 문집에 가까운 불완전한 책이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의 책이 나옴에 감격스럽다.


내 글의 주된 내용은 브런치에서만 털어놓던 내 속마음이었다. 특히 행정고시 이야기. 나는 PSAT을 세 번 보았다. PSAT은 적성시험이라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에 공부도 않고 소위 올림픽 정신으로 처음 시험에 응했고, 시험 규정도 숙지되지 않은 채 들어갔기에 당연한 결과로 떨어졌다. 두 번째는 나름 제대로 준비를 했지만,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아까웠지만 찍은 게 많이 맞았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다음엔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 예정일까지는 준비가 되었지만 코로나와 시험장의 말 못할 사정으로 개인적으로는 너무 후회 가득한 상황에서 떨어졌다. 뭐, 이런 사연이 있든 어쨌든 나는 행정고시 1차를 한 번도 합격하지 못한, 흔히 고시촌에서 불리는 '피떨이(PSAT 떨어진 이)'였다. 진짜 실력이 있었다면 붙었겠지.


-


나는 PSAT 1차에 떨어진 사실을 가족과 남자친구, 제일 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만 알렸다. 주위에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동기들이 많았고, 내가 느끼기엔 나만큼 1차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불합격 사실을 숨겼다. 합격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합격한 사람마냥 2차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컸다.


뜬금없지만 이 대목에서 엄마 이야기를 해야한다. 엄마는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지방에서, 정시로 아쉽게 서울대에 떨어진, 연대에 다니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멋진 딸.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만, 나의 문제는 엄마의 자존심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엄마는 엄마의 친구들에게 내가 1차는 합격하고, 계속 2차를 준비한다고 말씀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내가 1차 불합격을 툭 터놓고 말하지 못한 것이 엄마의 유전적 기질과 환경적 요인이 없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늘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


그래서인지 내 첫 에세이의 시작은, 백혈병 생존자의 투병기임에도 불구하고 행정고시 1차의 불합격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떠한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글을 제출하기 앞서, 엄마에게 글이 어떠냐고 평가를 부탁드렸다. 내심 "잘썼네, 고생했다." 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엄마의 첫 마디는 "행시 떨어진 얘기를 왜 그렇게 길게 해. 투병일긴데."라는 말이었다. 내가 "이 털어놓음이 내 병과 인생에서 중요한 숙제여서 그랬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시지 않아 하셨다. 하지만 제출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나는 내 고집대로 쓴 그대로 탈고를 했고, 엄마가 숨기고 싶었던 얘기가 세상에 드러났다.


사실 정식 출판사에서 발간도 되지 않은 책,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세상에 아무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엄마의 자존심에도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그저 나는 이 글을 씀으로써 내려놓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에 갖던 기대감, 그것이 엄마의 영향이 있었든지간에. 그리고 책을 낸 지금, 어찌보면 나의 불합격을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밝혔지만, 후회나 부끄러움보다는 후련함이 훨씬 크다.








최근엔 이식 후 숙주반응으로 167cm에 몸무게가 30kg까지 떨어져 삶의 의욕을 잃고 살았다. 그러나 급박하지만 5시간 동안 열심히 글을 쓰며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 내 궁극적인 꿈이 내 책을 내는 것이었지, 나 글 쓰는 것 좋아했지.'


2025년이 되었다. 1월 1일엔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아무런 신년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사실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마음이 구석 한 켠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출간을 기점으로 새해 버킷리스트를 하나 만들었다! 바로 내 책을 준비하기! 앞으로는 블로그든, 브런치든, 내 종이 일기장에든 글을 많이 쓸 것이다. 낱개의 에피소드들이 모여 내 인생을 퍼즐처럼 보여줄 때의 감정이 어떨지, 벌써 벅차오른다. 물론 아직 1월이라 새해의 무지막지함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쓰는 다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 '기대감'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 기분이 무지 좋다.


이 순간부터 나는 용기를 내려한다. 이제까지는 '보여주기에 안전한' 내 모습만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과 생각들도 적게 되겠지. 그래도 내가 겪었고 걸어왔던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내가 책을 내려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를 드러냄에 적절한 경계선이 무엇일지 글을 쓰면서 차차 알아가보겠다!


의지 넘쳤던 오늘의 글쓰기 끝~!






p.s.

혹시나 제 첫 글을 보고 싶으신 분이 계실까하여 은근슬쩍 책 구매링크를 남겨둡니다.

거의 원가 그대로 팔고 있구요, e-book은 3천원밖에 하지 않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는 책의 마지막 작가 입니다.

Project CHVR (@chovivor)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감사합니다 ><


.

.



<<오늘의 playlist>>



#psat #행정고시 #백혈병 #백혈병생존자 #암생존자 #암생존자에세이집 #우리가세상에적은문장들 #암경험자들의이야기

작가의 이전글여행자 P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