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고령층에게 무척 유용한 기술이다. 하지만 우연한 발견을 어렵게 한다.
머리가 유연한 젊은이에게는 정해진 답을 향해 직진하는 것 같은 알고리즘이 새로운 도전을 방해한다. 비슷비슷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새로운 시도하려는 이에게는 불필요한 기능이다. 미래는 늘 엉뚱한 상상과 새로운 도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머리가 유연한 젊은 세대에 의해서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창작물들은 새롭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미 만들어진 것들의 변형이나 반복이 많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비슷한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유사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는 까닭에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호응을 얻고 있다. 온라인이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한 방향으로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현재는 어떤 것이 대규모로 유행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유행이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유지된 역사는 없다. 기존의 것을 대체할 새로운 네트워크 방식이 또 나타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가 여러 번의 실패로 탄생하고, 여러 번의 거절을 견디고 사람들 마음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문화적 발전을 이뤘다. 종종 순간의 엄청난 환호가 확신을 갖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남겨지는 것은 '새로운 진짜'들 뿐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술로 추앙받다가 기술을 사용한 새로운 결과물로 귀결된다. AI는 발전하여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다. AI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도구지만 디자인의 대상은 아니다. 톱은 나무를 자를 수 있지만 디자인 없이 의자를 만들 수 없다. 인간다운 문화는 톱이나 망치가 아니다. 의자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문화적 진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 디자인이 필요하다. 원천 기술에 필요한 자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미래 세계에 승부를 걸 수 있는 것은 창작이다. 그리고 창작을 위해서는 엉뚱한 도전과, 실패를 해도 견딜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룬 의미 있는 성과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의도와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과정에는 사람들의 외면과 여러 번의 실패가 당연히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외면과 실패를 보듬을 사회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