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사무인간의 모험
by 글리 Oct 30. 2018

파티션, 그들 사이에 생긴 벽

사무인간의 모험

그들 사이에 생긴 벽, 파티션


인턴직 3개월을 무사히 마친 이사무는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이 됐습니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죠. 1년간 계약직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정직원 명찰을 따내기 위해서 갈 길이 멀지만 지금만큼은 사무직 직장인이 된 것을 자랑스레 여겼습니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서 일거리가 더 많아졌습니다. 인턴직일 때 호시탐탐 노렸던 정시 퇴근 명분도 사라졌습니다.   사무직 직장인의 특권인 자기계발 투자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가 점수로 매겨질 것 같다는 생각에 실제 성격은 사무실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파티션 너머로 쳐다본 광경은 머리를 푹 숙인, 얼굴 없는, 표정 없는 흰색 와이셔츠 물결이었습니다. 모두 화를 참고 있는 비슷한 성격, 같은 옷, 똑같이 구획된, 같은 평형 공간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곳에 모여든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공장 문과 사무실 출입구의 분리가 의미한 것은 물리적 환경의 분리뿐 아니라 노동자 계층 간 의식에 미묘한 ‘층’을 생성했습니다. 사무원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출입구가 달라진 현실과 경영자가 자신에게 직접 구두 지시를 내리고 이를 다시 보고하는 체계가 성립됨에 새로운 권력의 씨앗이 싹틈을 몸소 느끼고 있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사무원들은 꾸벅꾸벅 졸다가도 고개만 들면 바로 앞에 자신보다 연봉이 수십 배 많은 경영자와 상업가가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생산체계가 ‘왜 이 모양이냐’며 공장 근로자 감독을 수십 명 앞에서 면박을 주던 절대 권력자의 모습이 말이죠.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금의 권력과, 회사, 공장을 아우르는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코를 파서 튕기고, 귀를 후비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경우 말단 사

원이 경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경우가 희박하죠. 

이 당시에는 초기 사무실로 여겨지는 공간이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필사 2장 좀 해주겠나?” 경영자의 의사전달이 직접적이었고 권력자와의 물리적 공간이 가까움을 인식한 사무원들은 이를 차츰 자신의 권력 크기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영업과 거래 업무로 바쁜 경영자들의 ‘안 살림’을 맡은 주부와 같았습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사무원이라 불리는 그들이 자신이 직접 손대기 껄끄러운 자질구레하고 허드레 한 일을 맡아주기를 바랐습니다. 마치 경영자가 바깥 세계에서 원석을 캐오면 사무원은 사포를 가지고 말끔하게 정리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론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사무원 업무를 ‘여자가 하는 일’로 치부했습니다. 근육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고 진정한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경영자 옆에 한참을, 수시로 서 있는 존재였습니다. 

 사무원들은 바깥 세계의 인식처럼 자신의 업무에 모호한 정체성을 느끼고 수치심을 가질 때도 있었지만 경영자와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자신의 목소리도 내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회계원의 역할을 하던 사무원은 자신의 쥐꼬리만 한 봉급과 더불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경영자의 연봉 금액 또한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예 자신의 일당만 바라보고 살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에 비해 많은 것을 ‘알아 버린’ 초기 화이트칼라의 마음속에는 알 듯 모를 듯한 ‘보상심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기까지 늘어나는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사무원들도 증가했습니다. 기존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이 끝나면 뭉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면 사무원들은 알게 모르게 경쟁과 분노, 질투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경영자의 열악한 처우에 반기를 들고자 전우끼리 똘똘 뭉쳤지만, 사무원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봤습니다. 경영자와 싸우고자 하는 노동자 계층과 달리 사무원 계층은 경영자처럼 될, 되고 싶은 먼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입니다. 

     
‘나도 언젠가 경영자가 될 거야’
‘내 미래가 그려질 이곳에서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야’ 
‘머지않아 내 앞에 보이는 저 책상이 내 자리가 될지도 몰라’ 

지금의 일반 사무직 관리자 직급에서 나타나는 불안감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무 업무가 덜어지며 팀을 관리하는 입장이 될 때 업무의 모호함과 공허함을 느끼고는 하죠. 초기 사무원들도 일은 광범위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은 많은데 결과치를 수치로 뽑아내고자 하니 생산성은 높지 않았습니다. 경영자에게 ‘내가 이만큼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컸으나 책상 위 먼지를 터는 일로는 어필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중세 시대 도제처럼,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미래의 CEO라는 환상을 가지면서도 ‘결과치’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자신도 불안하지만 굳이 그러한 모습을 ‘자신보다 하위 노동계층’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사무원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업무 외에도 경영자와 딱 붙어 앉아 그들을 구워삶을 농담과 아부가 필요함을 인지했습니다. 경영자와의 가까운 물리적 책상 거리만큼 정신적인 연결을 원했습니다. 현대 직장인들의 사내 파벌과 정치는 이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1900년대 초기, 추후 50년 후에야 ‘화이트칼라’라는 다소 정형화된 명칭으로 불리기 전에도 사무원들은 그에 걸맞은 이미지를 형성해 갔습니다. 미국, 영국에서 누구나 사무원이 되는 현상과 아무나 될 수 없는 현상이 혼재했습니다. 이민자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사무원, 그들만의 계급을 형성했습니다. 지금도 토익점수로 이력서를 채우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 당시에도 영어실력은 사무원 능력의 기준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어 실력이 미천한 외국 노동자들은 할 수 없이 공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다른 노동자들과 점점 차별화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무원들은 지적 능력을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학회, 도서관, 학술회에 회원으로 등록한 후 여가 시간을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하거나 동료들과 술 한 잔을 기울였지만 사무원들은 “난 업무가 끝나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라며 경영자에게 어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근로자와 회사 간의 노사분쟁 사이에서 허리춤을 매만지는 화이트칼라의 모습은 100년 전에도 비슷한 양상을 띄었습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과 자본에 종속된 자와의 불협화음은 항상 예견된 것이었으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등장과 발전은 다른 현상을 야기했습니다. 


언론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창문 밖에서 바라보기에 사무실 안은 고요했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공존하는 공간이 저리 조용한 것이 의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무원이 그들의 공간을 유지하고 바깥세상의 잡음을 철저하게 막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누리고자 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속으로는 경영자의 높은 연봉 대비 자신의 적은 월급이 쓰인 봉급 대장이 머릿속에 맴맴 돌았지만 사무실 안에서는 웃음과 공존만 존재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외부에도 그렇게 보이길 원했습니다.  “나는 이 파티션이 쳐진 작지만 안락한 공간에서 경영자를 모시고 몸과 마음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이죠. 


1인기업/자기계발/책쓰기 온라인 스터디 멤버 모집중입니다. 

상세 내용은 <한국지식창업협회> 네이버카페 가입 후 공지를 확인해 주세요~



유튜브-글리쌤TV 운영중입니다. 1인기업, 직장생활, 글쓰기, 책쓰기로 함께 성장하실 분들은 구독해 주세요

http://bitly.kr/VxgG



안녕하세요. 노동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사무인간의 모험>을 쓴 

이종서 작가입니다. 이 매거진은 <사무인간의 모험, 이종서, 웨일북> 中에서 

일부 발췌해 재구성 했습니다. 현직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책을 통해 소통하기를 좋아합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놀러오세요 :)  


<사무인간의 모험> 도서 정보 보기

작가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js0916/

구독과 댓글은 집필에 큰 힘이 됩니다:)


keyword
magazine 사무인간의 모험
소속휴먼에너지 직업칼럼니스트
콘텐츠 큐레이터, <사무인간의 모험> 저자. 1인기업, 책쓰기, 카피라이팅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어중간한 삶을 지향합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