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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여행해
by 남상화 Mar 19. 2016

여행한다면 이들처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 정오의 태양은 이마 위를 기분 좋게 간질인다. 성 마리아 성당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고 노란 직물회관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길게 뻗어있다. 귀족들의 사교장이었던 광장은 밤낮으로 관광객을 위한 축제가 한창이다. 행인만큼이나 그들을 반기는 상인과 거리예술가로 거리는 북적인다. 쇼핑을 마친 우리는 즉석요리된 소시지 감자 버섯을 한 접시씩 담아 벤치에 앉았다.  


“임신인걸 알았을 때 아리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 그래서 내가 말했어. '아리, 그런 표정 짓지 마. 아이를 갖는다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 거야.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잖아.' 이렇게 말이야. 우리 아이는 영어와 스페인어 두 언어를 하게 될 거야.” 


이틀 전 숙소에서 처음 만났을때도 르네는 내가 그녀의 멕시코 남자친구를 알고라도 있는 것처럼 꼬박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캐나다에서 온 르네는 15년지기 제스와 유럽여행중이다. 


떠나기 직전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온 여행을 취소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대신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제스는 여행 내내 새로운 것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르네는 컨디션 관리를 하며 쉬엄쉬엄 다녔단다.        


뽀얀 얼굴에 드레드락 머리를 한 르네는 캐나다에서 인디언 아이들을 돌보고, 주근깨가 매력적인 제스는 퍼니라는 로컬매거진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했다. 



21일 동안 7개 도시를 여행하는 이들은 곧 크라쿠프를 떠나 잘츠부르크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센터 직물회관. 머그컵과 스노우볼, 하얀 바탕에 파란 도트가 그려진 도자기, 꽃문양이 수놓아진 스카프 같은 기념품 천지다. 현지물가 두 배에 달한다는 블로그 정보를 읽은 나는 경계의 눈빛으로 겨우 기웃거릴 뿐이다. 그러나 폴란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제스와 르네는 오르골에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에도 쉬이 감격한다.    


“정말 예쁘다. 게다가 이거 정말 저렴한데? 아, 폴란드 너무 좋아”

“이게 더 예뻐? 이게 더 예뻐?”

“너한테는 파란색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지금 입고 있는 옷 하고도 딱 인걸?”

“어머, 양털러그다. 어려서 사촌 집에 가면 이게 있었어. 캐나다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알지? 나는 양털러그 위에서 자는 사촌동생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고. 이 정도면 캐나다보다 훨씬 싸잖아. 나 이거 하나 사야겠어.”     


15년 지기 단짝의 합이 쇼핑할때 빛을 발했다. 

아 가볍다. 십 대 소녀들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경쾌하다.       


'6개월 여행을 위한 배낭은 3kg 내외,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쇼핑은 일체 금지.   

수박겉핥기는 안돼, 온전히 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한 장소에서 최소한 일주일은 머무르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곳은 노노, 현지인들 사이에서 먹고 마시고 놀아야 진짜 여행이지!' 


배낭을 꾸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만들어온 나만의 여행 법칙, 참 부질없다. 

작은 것에도 아이처럼 기뻐하고 하루하루를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보내는 제스와 르네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여행의 즐거움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르네, 양털러그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한거야?”

양털러그를 흡족하게 쓰다듬는 르네에게 묻는다. 

“아니, 이건 나를 위한 선물이야”

르네의 천진함에 또 한번 웃음이 난다. 


르네는 지금 임신 8주 차다. 전날 저녁을 함께 한 영국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신 초기에는 불안정해서 주위에 잘 알리지 않는다던데...” 

그러자 르네가 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응. 맞아. 그렇지만 우리 이모할머니가 그랬어. 알려야 한다고. 물론 초기에는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어. 그래도 알려야 축하도 받을 수 있고 혹시 일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고 말이야. 아니면 아픔을 혼자 감당해야 하잖아.”     


말할 때마다 고향 퍼니가 나오고 할머니와 남자친구를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 르네는 어쩌면 나보다 행복에 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여행과 아이. 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임산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자를 보면 시선이 오래 머문다. 

  


광장 한가운데 히피 행색의 남자는 실로 연결된 막대를 양손에 쥐고 거리에 비눗방울을 만들어 낸다. 그 옆으로 중세 복장을 한 마부가 모는 마차가 지나가자 비둘기들이 일제히 흩어져 날아오른다. 


그 풍경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는 제스의 손목에도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다. 폴란드에 고향을 둔 할머니 친구에게 엽서를 쓰는 르네의 뒷목에는 빨강 노랑 초록의 세 그루 소나무가 있다. 제스의 손목에서 르네의 뒷목에서 친구와 가족과 이웃들이 정겹게 모여 사는 캐나다 퍼니라는 동네가 들여다 보인다.    


삶을 사랑하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이 그리고 나비와 비눗방물과 같은 자들이 행복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 경쾌하고 어리숙하며 사랑스러운 그리고 발랄한 작은 영혼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 부르게 된다.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음식 접시를 다 비우기도 전에 배가 불러온다. 한 아저씨가 다가온다. “다 먹은 거야? 버릴 거면 나한테 줘.” 각자 접시 위에서 남은 음식을 덜어내니 한 접시 넘치게 음식이 나왔다. “맥주도 좀 드세요.” 맥주까지 나눠마셨다. 노숙자 아저씨와 함께 한 순간마저 유쾌했던 것은 그는 구걸하지 않았고 우리는 동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 떠나야 하는 르네와 제스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내 손엔 대신 부쳐주기로 한 르네의 엽서가 들려있다. 임신 초기에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잃은 적이 있다고, 혼자 아픔을 다 이겨내고 난 뒤에야 담담히 말하던 15년도 더 된 내 친구 얼굴이 아른거린다. 지금은 예쁜 딸아이를 둔 내 친구와 나도 함께 여행하고 싶다.  


나비와 비눗방울처럼, 그리고 르네와 제스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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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너를 여행해
사람을 여행하고 순간을 기록합니다. 터키그리스 여행책<산토리니, 주인공은 너야>지음. flowerpart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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