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지선 추도

안녕, 친구야

by 오상익

추도.


2013년 삼성전자 강연 때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속사 나오고 혼자 지낸 7년 정도 서로 일하고 연락하는 사이로 지냈다. 보통 사회에서 동갑 만나기 어려운데 84년생 동갑이라 그때부터 서로 “친구” “친구”했었다. 그러다 아내와도 몇 번 같이 만나고 지선은 HOT, 아내는 GOD 팬심 때문인지 아니면 둘다 공부머리가 있는 범생이라 그런지 둘이 케미가 잘 맞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도 아니었고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지선의 정신적 지주였던 한 친구의 비극적 죽음에 계속 멘탈이 나가 있었던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수년이 지나도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친구들끼리 용인 납골당 가서 펑펑 울고 온다고 했던 기억도 난다. 더이상 쓰는 건 고인과 동료,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니 고마운게 참 많다. 내가 나온 고교, 대학교 심지어 출강대학까지 모두 빠짐없이 와주었다. 소소한 선물과 손편지도 종종 안겨주었고 기억나진 않지만 어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뭔가를 받은 기억도 난다. 데뷔 10년 차까지 차가 없던 지선을 집앞에 데리러 가면 늘 먹을 것을 싸주시던 어머니.. 대체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요...


가끔 “넌 이 요상스런 바닥에서 믿고 일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라고 먼저 새해인사를 보내주는 등 내게 신뢰를 보내줬다. 그 덕분인지 책에 희극인 박지선에게 감사하다는 글도 쓸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평생을 자신이 희극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희극인 선배들의 과거 영상을 보며 이 때가 제일 재밌었다며 낄낄댔던 모습이 천상 희극인이었다.

(ebs 지식채널 e에서 자신을 다룬 것을 스스로 대견해하던 네가 만약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면 또 어땠을까하는 공상도 해본다.)


한가지 위안삼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의 마지막을 애도하고 진심으로 슬퍼하여 준다는 것. 그만큼 짧지만 불꽃같은 인생을 산 것이라 믿으며 기도한다.


소설과 시집을 좋아했고, 스폰지밥을 사랑하던 멋쟁이희극인박지선.

고통없는 곳에서 평안하게 지내라 친구야~!


Ps. 화환만 보내고 조문은 안갈려고 했다. 왠지 내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그러다 장례식장이 아내직장임을 알고 안 올수가 없었다. 목동이 가깝다며 이대목동병원 쪽에서 같이 밥먹자던 약속도 못 지켰는데.. 응급실 오면 지인이라며 생떼 쓸거라던 모습도 생생한데.. 여기서 너를 액자 속에서 보게 되다니...



오늘 장례식장 앞에서 소영이가 그러더라.

“언니 있었으면 막 소영아 이리와 하면서 챙겨줬겠다”



명복을 빕니다



#멋쟁이희극인박지선 #박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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