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Jul 16. 2023

느림과 실패의 상관관계

자꾸 느려 늘 실패했던 기억을 되새기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행동이 느리단 소리를 종종 듣는다. 밥을 먹는 속도도, 옷 갈아입는 데 걸리는 시간도 더디다. 짐을 챙겨 바깥으로 한번 나가기조차 만만찮다. 문을 열고 나가 얼마 안 있다가 이내 잊은 물건들이 생각나 다시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너 느린 게 하루 이틀이야?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너희 반에서 늘 꼴찌로 알림장 쓰고 왔잖아.”


내 인생에서 유구한 '느림'의 역사. 엄마는 나의 느림에 대해 말을 꺼낼 때 늘상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꺼낸다. 그러면 나는 괜히 한번 더 중얼거린다. “알림장 혼자만 늦게 쓰지 않았거든! 그때 같이 늦게까지 쓰던 남자애도 있었어...”

혼자만 느리지 않았다. 괜히 그 사실을 강조하고 싶지만 내가 남들보다 뭐든 템포가 늦다는 사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급식시간에 밥을 제일 늦게 먹고 소풍 갈 때 같이 버스를 타고 갈 만큼의 친구가 생기기까지도 오래 걸리는 아이. 첫 연애도 비교적 늦게 시작했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환장하게도 업무 속도가 느렸다. “저 녀석 잘라 말어?” 그 시절 나의 사수는 손이 느린데 일머리 잘 안 돌아가고 실수까지 연발인 나를 두고 가슴팍을 여러 번 쳤겠지. 하지만 느린 사람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미숙함이 마치 없는마냥 매끈한 얼굴로 출근하는 수밖에.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뭔가를 보면 자꾸 잊는다. 잊으니까 다시 앞의 일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또 늦는다. 눈앞의 사람 말을 듣다가도 점점 머릿속이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가는 마냥 우주를 방황하는 내가 있다. 내가 어디까지 들었더라. 혼자 갈피를 못 잡는 사이 또 늦는다. 다른 동료들은 척척 처리하던, 일정 수순이 반복되는 고정된 일상 업무가 내게는 무척 어려웠다. 도무지 재미가 없는걸. 마감과 야근의 한 가운데에 자잘한 반복 업무까지 시켰으니, 지금 생각하면 일의 양 자체가 엄청났다. 속도가 빠른 사람마져 피곤함에 주저앉을 분량이었음을 안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내가 보기에는 오로지 나만, 내 무능력이 문제였다. 내 바로 앞에 있던 디자이너 h과장님도, 파티션 하나를 두고 건너편에 앉아 있던 기획팀 l대리님도 다들 기계처럼 밀려드는 제안서와 실무를 쳐내는, 요즘 말로 ‘일잘러’였다.




애써서 일의 피치를 올렸다. 최대한 남들의 속도에 맞춰서. 내가 속한 팀 업무의 숙련공이 되어야 해. 다른 팀원들이 식사하러 갈 때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혼자 업무를 처리한 적도 있다. 신이 속도는 내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끈기만은 허락했던지. 키보드를 치는 내 손은 점점 빨라졌다. 사람들의 업무 속도에 맞출수록 팀원들과의 소통도 편해지고 광고주의 인정도 생겨서 조금 신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믿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더이상 나는 느리지 않아. 다른 사람과 비슷하거나 약간 느린 정도야. 솟아오르는 유능감. 심지어 주변의 인정에 만족스럽기까지 했던 출근의 나날. 다만 이 성장담은 반전의 새드엔딩이다. 팀에 매출 1000만원을 가져다주던 나는 번아웃에 훅 고꾸라졌다. 낮아지는 인사고과. 급기야 찾아온 퇴직 권유. “여기 회사에서 당신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팀장은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한 채 이렇게 말했다.




이후로도 몇몇의 회사를 다녔다. 무사히 제발로 나온 회사도 있지만 인사평가자를 만족시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일머리. 체크 리스트를 들고 일을 해도 그 체크 리스트마져 잊어버리는 나. 회사라는 조직은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로 휘날리는데 나는 거북이마냥 기어갈 수밖에 없나보다.

조직 밖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일의 면면을 기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40분 일하면 20분 쉬는 식의 기계적인 생활 흐름에 익숙해지는 과정. 이런 시도가 늘상 성공하진 않아서, 실패할 때나 어려움을 겪을 때의 상황을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털어놓았더니 이런 반응이 왔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단 한번 받아봐. 우울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약 먹으면 낫지. 상담보다 가성비도 훨씬 좋다구.” 지금 생각하면 항우울제에 급여 적용이 된다는 사실과 가성비라는 단어가 아니었으면 제발로 정신과에 찾아가진 않았겠다.




정신과에 가서 두툼한 분량의 문진표를 받았고, 어쩐지 나에게 해당되는 증상이 많았고, 주로 느끼는 감정과 그에 따른 신체증상 등의 대화를 나눈 끝에 ‘만성의 경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근데 질문을 좀 할께요.”


“네네.”


“십대 중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의 본인을 생각하며 답해봐요. 어떤 활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나요?”


“네, 뭔가를 일정하게 반복하는 거 잘 못했어요. 지금도 좀 그래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던지, 대화할 때 집중이 흐트러진다던지 하는 게 있었어요?”


“맞아요. 손에 쥐고 있던 물건도 잃어버려요. 집중력도 흩어지고요. 지금도 그래요.”


“adhd가 의심되니까 한번 그 검사도 해봅시다.”




adhd라는 이름. 왠지 내 인생에서 반복되던 느림과 실패의 상관관계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애초에 뇌가 고장 나 있었나보다. 집중력 검사를 했고 결과는 adhd 강력 의심. 항우울제인 설트랄린과 adhd 치료제인 스트라테라가 처방됐다. 의사는 늘상 마주하는 감기 환자를 진단하듯 동요 없이 말했다. 우울증에는 완치 개념이 있지만 adhd에는 그런 게 없다고. 평생을 함께 한다는 걸까. 그러면 반려질병인 셈인데. 이제 알았다 해도 이미 이렇게 살아왔는데 뭐 새삼스럽게. 약을 입에 털어넣는다. 약을 증량할 때마다 적응 과정에서 졸린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좀 속상한 부분은 있다. 좀더 옛날에 약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알림장 쓰는 속도가 다른 친구들과 비슷했을까. 일잘러가 됐을까. 미숙하다고 사수한테 큰 소리를 덜 들었을까. 실패의 경험이 덜 쌓여서 우울감과 먼 사람이었을까.


우울증 약도 adhd약도 몸에 잘 듣나보다. 엄마는 감정이 잔잔해져 덜 화내게 된 나를 보고 "천사가 됐네"라며 좋아하고 아빠는 "예전보다 시키는 일을 덜 까먹고 오네"하며 신기해 한다. 기분과 기억력의 보완으로 하는 일에 좀더 속도도 붙었다. 예전의 인생이 자잘한 돌이 날아오는 길이라면 약먹은 후의 인생은 점점 미끈해지는 포장 도로라고 해야 하나.

느리고 미숙해서 ‘별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그만큼 일과 일의 사이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남들은 이렇게 살았던가. 아니, 원래 이렇게 살아야 했던가. 잘 모르겠다. 덜 느린 사람이 된 나는 가끔 내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같다. 어디까지가 내 성격 덕이고 어디까지가 adhd 병증의 긍정적 작용인지. 이런 부분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지. 다만 이건 확실히 알겠다. 이제껏 느린 내가 버텨온 삶의 바톤이 지금의 덜 느려진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거.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좋아하는 건 쉽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