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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TnG 상상마당 시네마 Jul 22. 2022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질문을 던지는 <로스트 도터>

<로스트 도터> 리뷰 및 소개 & 씨네21 이다혜 기자 상상톡톡 후기

올리비아 콜맨, 제시 버클리, 다코타 존슨 주연,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 <로스트 도터>는 그리스로 휴가를 떠난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가 젊은 엄마 니나(다코타 존슨)를 만나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나의 눈부신 친구’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한 편인 『잃어버린 사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어요. 두 딸을 두고 집을 나와버린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를 보고 마당지기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스토리에 완벽하게 넉다운되었답니다. <로스트 도터>는 '모성'의 굴레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불편할 수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그저 오롯이 이해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완벽하게 헤아리는 영화였어요. 그럼 지금부터 <로스트 도터>에 대한 리뷰, 그리고 씨네21 이다혜 기자님과 함께한 상상톡톡 현장을 가보도록 할게요!


부식된 기억을 채워 넣은 'LOST'의 자리

*<로스트 도터>의 리뷰 및 소개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그리스로 휴가를 온 대학교수이자 중년 여성인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자꾸만 젊은 엄마 니나(다코타 존슨)가 눈에 밟힌다. 어린 딸 엘레나를 데리고 해변에서 노는 니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자신(제시 버클리)을 상기시킨다. 그러던 중, 해변가에서 놀고 있던 딸 엘레나가 사라지게 되고, 레다의 기지로 엘레나를 찾으면서 니나와 감정적 유대감을 쌓는다. 하지만 엘레나가 가지고 있던 인형이 사라지면서 모녀 관계는 점차 균열에 이른다. 인형을 가져간 것은 다름 아닌 레다. 돌려주려고 마음을 먹지만, 인형에게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인형과 함께 뒤엉키며 발화된 두 딸 비앙카, 마사에 대한 인상은 니나, 엘레나와 병치된다. 레다는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니나를 관음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도달한다.


<로스트 도터>는 원작 소설에서 드러난 자기고백적 성격과는 달리 생략된 서사와 감정으로 현재의 레다에게 집중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드러난 올리비아 콜맨의 측면 얼굴 클로즈업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의 해변의 생경함과 동시에 넋이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이질감을 불러일으켜 심리 스릴러 장르를 부각시킨다. 이는 배우 출신 감독인 매기 질렌할의 섬세한 감정 묘사로 설계된 화면구성 방식이다. 영국 록 밴드 틴더스틱스의 멤버인 딕콘 힌크리프 음악감독이 삽입한 곡들 역시 '변주되고 마모'되어 가는 감정의 굴곡을 담아내며 매력을 돋보인다. 쉴 틈 없이 침범하고 틈입하는 불쾌한 요소들은 불안감의 고조 그리고 타자를 통한 자기인식을 가능케한다.


부식된 기억과 함께 가라앉은 침전물들은 레다의 밀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잃어버린 자리에 다시 발을 들이밀어 천천히 안착한다. 고결하지만 무력한 서사가 지닌 층위는 '폭발하려는 걸 참다 결국 터져버린 것처럼' 혼란스러워하는 내면을 가득 안는다. 아이에게 분리되고 싶었던 젊은 레다의 이중적 면모는 거울의 단면처럼 니나에 의해 투영된다. 감춰진 닮은 부분을 모색하는 이들은 환영처럼 날아든 등대의 불빛처럼 아름답지만 소란하다. 과연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올리비아 콜맨과 제시 버클리, 다코다 존슨의 적절한 충돌은 여성과 엄마의 양립으로 그들의 열망을 표현하기에 탁월하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함께 <로스트 도터> 'LOST'의 자리를 함께하다.

지난 7월 19일 화요일 저녁, <로스트 도터>의 상영 후 진행된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함께하는 상상톡톡은 늦은 밤까지 관객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어요. <로스트 도터>를 보고나면 궁금한 부분, 흥미로운 부분을 차분하면서 재치있게 얘기해주셨는데요. 영화의 비하인드와 장면 분석, 질의응답으로 1시간을 꽉 채워주셨습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분 나쁜 '에너지'가 있어요. 끝에 어떻게 된 것일까하는 미묘하고 기묘한 감정이 드는데 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시작한 상상톡톡 시간, 지금부터 현장을 가볼게요!ᕙ༼◕ ᴥ ◕༽ᕗ


<로스트 도터>의 탁월한 각본과 섬세한 묘사에 대하여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로스트 도터>는 원래 있던 이야기를 각색하는 방식으로 쓰여졌어요. 다른 원작의 형태가 존재합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레다의 행동이 지닌 동기를 파악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죠. 원작 소설인 『잃어버린 사랑』을 보면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

모성애와 자아실현의 간극에 대하여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모성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을 많이 합니다. 직역하면 잃어버린 딸이 영화의 제목인데요. 과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 잃어버린 것은 오히려 인형입니다. 심지어 ‘레다’라는 주인공은 자신의 딸과 인형 에피소드가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이 생길 때,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그대로 쏟아내는 방식을 택합니다. 분노를 선택했다기보다는 통제 불가능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시 버클리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영화 중반부, 젊은 날의 레다를 주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어쩔 줄 모르는 레다를 보면서 더불어 현재의 레다는 젊은 아이를 돌보는 니나라는 여성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비슷한 과거를 지닌 모습에 약간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니나는 이상적인 모녀관계처럼 그려집니다. 두 모녀가 정말 화기애애하게 노는 모습은 그림 같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균열이 생기는 원인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딸이 사라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딸이 지니고 있던 인형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됩니다. 아이는 이때부터 엄마인 니나를 괴롭히는데, 인형이 사라지며 굉장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남편의 강압적인 성격과 시댁 식구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들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만약 레다가 정말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빠르게 인형을 돌려주어야 했겠지만, 후반부에 레다가 열쇠를 넘겨주려고 할 때서야 인형을 넘겨줍니다. 마치 아이를 버릴 때 했던 행동과 유사하죠.

인형이 대체하는 것에 대하여

인형을 되돌려준다는 것에 분노한 니나는 핀을 가지고 레다의 배를 찌릅니다. 이 인형이 상징하는 것은 뭘까요?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인형은 유사 딸과 같은 사물로 나타납니다. 영화에서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레다는 두 딸과 굉장히 소원한 상태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인형을 훔친 레다가 인형 입안의 구정물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핀셋으로 빼내다가 벌레가 들어가 있던 것을 알아채는 장면입니다. 그런 대목에서 사실 아이가 인형을 잘 돌보았다기보다는 자신의 폭력적인 본능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입안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행위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의 낯선 느낌과 뱃속에 낯선 존재가 자리 잡은 불쾌감을 상징합니다. 인형이 하고 있는 역할은 다양한데, 이상적인 딸을 훔쳐 오는 행위로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폭력적인 충동을 해소할 수 있는 타자로서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절개된 상처, 봉합의 부재에 대하여

이 영화는 남자들의 등장을 배제하고 봐도 여성들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결말에서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고 해소되는데요.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레다는 딸과 통화를 하면서 마무리됩니다. 매기 질렌할은 갈등을 봉합하는 형식이 아니라 갈등을 터뜨리는 방식을 택합니다.


영화에는 두 엄마가 등장합니다. 한 명은 임신을 하고 있고, 한 명은 아이를 키웁니다. 나이 상으로 보면 자기 딸 또래의 엄마가 니나이고 임신을 한 여자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합니다. 레다가 자기 자신을 감정 이입하는 대상은 더 젊고 아름다운 니나입니다. 이는 젊은 날의 복합적인 욕망과 커리어에 대한 강한 열망의 분출로 표현됩니다.  

Q&A

Q. 니나의 가족들이 레다를 경계하는 이유

A. 이 영화에서는 불쾌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해변에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것과 위에서 떨어진 솔방울로 인해서 상처를 입는 것들이 그렇다. 특히 극장 장면이 그러하다. 젊은 남자들이 시끄럽게 구는데, 레다가 한 번은 직원을 부른다. 하지만 직원이 나가면 다시 상황은 원상태다. 그때 구석에 있던 나이든 남자가 조용히 하라고 외치고 상황은 정리된다. 그리스 마을은 가부장적인 질서가 모두를 지배하는 곳이다. 남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크고,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을 때 맞서서는 안 된다.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구조인데 레다 역시 어떤 사람인지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레다는 원칙주의자 같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즈음에 과거가 등장하면서 혼란스러움이 가중된다. 심리 스릴러가 가장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로 주인공을 믿을 수 없는 위치에 두고 교란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혹은 여성 혹은 하나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된다. 그의 디테일한 연출에 감탄하게 된다.


Q. 분명 탁 트인 바닷가 배경인데, 답답하고 고립된 기분이 드는 연출인 것 같다.

A. 영화에서 바닷가에 있다고 해서 자유롭거나 해방감을 주지 않아서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신선했던 점은 감히 연민을 갖는 것으로 연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나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야’,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점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매기 질렌할이 연출하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점은 두 딸을 키우면서 느꼈던 부분이다. 모성애가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으로 아끼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레다가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이기심처럼 그런 감정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Q. 과거의 레다는 딸들을 두고 떠났고, 지금은 인형이 사라졌는데 제목이 <로스트 도터>인 것이 재밌다.

A. 원작이 잃어버린 사랑이다. 시적인 은유라고 이야기를 할 때, 도터라는 자리에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중년이 된 지금의 성적인 욕망, 떠나버린 딸들까지. 잃어버린 여러 가지가 도터의 자리에 포함될 수 있다. 마치 하드보일드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찾아 뚜벅거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극도의 불안이다. 그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의 가중처럼 가장 보편적인 여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불안감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본래의 것을 상실한, 텅 비어 버린 자리에는 레다가 니나를 보는 과거 자신의 시선이 안착했다. 뒤틀린 시선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가속했고, 결국 무언가 잃어버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안감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연출할지 모르지만, 장르 영화 쪽으로 연출을 해도 잘 할 것 같다"는 이다혜 기자의 찬사처럼 매기 질렌할이 분출한 <로스트 도터>의 세계관은 이후 그려질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글: 이하늘

수정/구성: 마당지기

스틸 출처: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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