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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Jan 03. 2017

반론: JTBC기자의 정유라 신고는 비난 받을 수 없다

직업윤리와 사회윤리가 상충될 때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가 <미디어 오늘>에 기고한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교과목 중에 하나가 직업윤리의 하나인 <연구윤리>인데요, 지난 학기에 직업윤리와 사회윤리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 소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고]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관찰자로 남았어야"

박상현 이사의 기고문 요지는 'JTBC 기자는 보도윤리를 따라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으며 정유라씨를 덴마크 경찰에 신고한 행위, 즉 사회윤리를 따른 행위는 보도윤리에 반하므로 잘못됐다'라고 하겠습니다. 또

JTBC가 언론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JTBC는 선한 의도로 문을 열었겠지만,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보도윤리 관점에서 보면 우려의 목소리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직업윤리의 추구는 사회의 안녕과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직업윤리와 사회윤리가 상충될 때 어느 쪽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사회 일반이 따르는 법이나 윤리체계가 특정 직업에 적용되는 윤리체계와 상충되는 상황은 여러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의사의 비밀 보장 의무(Physician-Patient Confidentiality)를 들 수 있습니다. 의료법상, 또한 의료윤리상 의사는 보편적인 사회윤리에 배치된다 할지라도 환자의 비밀을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가 있지요. 환자가 폭력행위와 관련된 상해를 입었다고 판단할 이유가 충분할 경우 의사는 수사기관에 관련 정보를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대부분의 주는 이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폭력행위는 사회의 안녕과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직업윤리가 일부 제한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이지요.


같은 이유로 심리치료사는 환자의 비밀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치료과정 중에 알게 된 살인이나 아동학대와 같이 사회의 안녕과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련기관에 반드시 고지하도록 되어있지요. 고해성사를 받는 성직자나 의뢰인의 비밀을 보장해야 하는 변호사도 같은 맥락에서 직업윤리 추구에 일부 제한을 둘 수 있습니다. 철저히 과학적 진실만을 탐구한다는 연구자의 의무이자 권리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배아줄기세포의 사용이나 생체실험과 같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상충될 소지가 있는 영역에서는 이를 일부 제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요컨대 직업윤리의 추구가 사회의 안녕과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 이를 일부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다는 것이 직업윤리학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정유라씨의 신병확보가 정말 사회의 안녕과 보편적 가치에 직결되는 문제인가? 이것이 핵심인데요. 글쎄요, 물론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JTBC 기자의 정유라씨 신고는 단순히 불법체류 문제 근절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시민을 거리로 내몬 사건의 핵심인물,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박영수 특검과 헌재의 탄핵심리를 풀 중요한 열쇠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행위였습니다. 사안의 심각성과 정유라씨의 신병확보가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도윤리를 일부 절충하는 것은 타당하며, 따라서 JTBC 기자의 정유라씨 신고는 비난받을 수 없다고 봅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Sangwon Suh (Professor;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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