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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Aug 20. 2018

인류 진화의 역사와 지속가능성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인류 약사(略史)"를 읽고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태리 메시나에서 열린 국제 지속가능 발전 연구학회의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그때는 제 동료 교수 David Lea가 추천해 준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 인류 약사(略史) Sapiense: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과연 '지속가능성은 인류 진화의 역사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이란 미래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이지요. 우리가 우리 세대의 필요를 만족하기 위해 지구온난화 물질을 발생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희소 자원을 몽땅 써버린다면, 미래세대는 그들이 생태 시스템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영원히 빼앗기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까지 인류 역사상 미래세대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면서도 번성할 수 있었던 체제가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혹시 생각나시는 체제가 있나요? 저는 없더군요. 아마도 인류가 미래세대의 권익을 보장하는데 치중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은 소위 '진화론적 안정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화 생물학에서 '진화론적 안정 전략' 또는 ESS란 쉽게 말해 한 개체군의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경쟁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은 전략인데요, 보통 순전히 이기적인 전략인 경우가 많지요. 인류 진화 과정에서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구성원 또는 집단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20세기 인류 최대의 사회적 실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그 구성원이 자유롭게 개인의 이윤 추구를 목표로 행동할 수 있었고, 그러한 행동양식이 인간의 진화론적 안정전략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지속가능성이 인류 진화의 결과인 우리의 본질적인 태생과 공존할 수 없다면, 현 사회구조에서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달성한다는 것은 아마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은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인류가 그동안 해결해 왔던 많은 문제들--예를 들면 기아(飢餓)나 질병--과는 차원이 다른, 그동안 인류가 직면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됩니다.


물론 희망적인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 사회가 지속가능 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세우고, 파리 협약(Paris Agreement)을 통해 지구온난화 물질 배출량을 감축하는데 합의한 점 등은 지속가능성이 인류 진화의 역사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국제사회가 실제로 이들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는 인색하다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태생적 성질과 배치된다면 왜 지속가능성이 현대 인류의 담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인류의 탁월한 공감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세대 입장에 서 보도록 하게 한 것일까요? 글쎄요.


문제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대부분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대부분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고 있고 약속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별다른 제재를 할 수 없는 구조이지요.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체득한 본성이 지속가능성과 양립할 수 없다면, 제도적 장치 없이 단순히 호의(goodwill), 또는 자발적 노력에만 의지해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의 요건과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도록 해 준 진화론적 본성이 충돌할 때, 아마도 인류는 필연적인 시험에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인류는 과연 자신의 진화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지속가능성의 길을 열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때 우리에게 지구를 정복하게 했던 우리의 본성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정복하도록 허용해야 할까요? 글쎄요. 아마도 이 문제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확실한 것은 지속가능성이 현재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정치 경제구조에서는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은 인류에게 전혀 새로운 문제이고 따라서 전혀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야기한 것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이 글은 LinkedIn에 게재한 "Is sustainability compatible with our evolutionary history?"를 자유롭게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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