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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4. 2022

2022년 05월 08일

어머니의 어머니께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고
파도에 넘실대지 않는다고

내가 오롯이 흔들림 없이
살았다고 말하지 마라

소금기가 말라버린
거치른 기억 속에

어머니 당신을 사모하는
작은 딸 혀 끝이 아립니다


옥 양의 편지를 읽고,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시기가 생겼다면 저는 나쁜 손녀일까요.

옥 양의 어머니를, 나의 외할머니를, 저도 떠올립니다. 어쩌면 살아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지금 더 자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는 시시하다며 자막 나오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찾아보시던 외할머니께서 어느 순간 매일 보는 일일드라마 주인공을 기억하시지 못하거나, 몇 번씩 밥은 먹었냐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셨을 때, 아흔이 넘은 연세에 자연스러운 일일 거라 넘기면서도 섬찟 무서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 떠올려보면, 외할머니께서 제 곁을 떠나는 것보다 옥 양 곁에 머무르실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외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 홀로 슬하에 여섯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일찍이 혼자가 되어 자식을 기르고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얼마나 외롭고 고되었을지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외할머니의 부고를 들었을 때 옥 양 걱정이 가장 앞선 것이 사실입니다.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신다면 우리 옥 양은 명절마다 어디에 가서 막내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의 고향이 필요할 적 어느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털어놓을 수 있을까, 사고무친 옥 양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린 시절 타고 다니던 세 발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뗀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아는 것처럼 남몰래 추억하겠구나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한평생 고생하시고도 그늘 없이 웃음을 지어 보이시는 할머니를, 불쌍한 마음이 들어 한 번 때려본 적도 없이 키웠다는 할머니의 육아를, 누구보다 자랑하며 사랑하던 사람이 옥 양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찮으신 몸이지만 조금 더 오래 옥 양 곁에 머물러주시기를 자주 그리고 오래 바라고 바랐습니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분 나빠 불편한 내색하시는 걸 뵌 적이 없습니다. 자식들도 어느 하나 사랑 없이 키우지 않은 자식이 없고, 손자 손녀들에게도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오랜만에 뵈어도 그저 오래된 동화 속 시골집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지금 할머니 계신 하늘이 천국이 아니라면 세상에 천국은 없는 거라 단연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생전에도 돌아가신 지금도 외할머니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옥 양은, 잘 웃고 또 그만큼 잘 우는 옥 양은, 기댈 곳이 많지 않아 기대는 곳에서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옥 양은, 아직 너무 어리고 어렵습니다. 그러니 바람이 있다면 우리 옥 양 꿈에 자주 나와주시고, 옥 양의 행복과 행운을 함께 빌어주세요. 파도가 치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안녕하질 못합니다.


오늘, 며칠 전 옥 양이 썼다며 읽어준 애모의 편지가 계속 떠올라서 편지를 하늘에 부칩니다.

옥 양의 무사안녕을 함께 빌어주세요.


외할머니의 무사안녕을 바라며.

이기적이게도 여직 바람뿐인 손녀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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