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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6. 2022

2022년 05월 04일

내가 날 좋아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나의 특등으로 귀한 ㅍ.


시작은 이중섭 화백의 편지를 읽다가 ‘특등으로’라는 표현이 너무 귀여워 꼭 써보고 싶어서 이렇게 불러본다. 히히. 네 생일 축하 카톡 읽고 지금 사무실인데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호도독 닦았어. 사실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도 계속 눈물이 나서 중간중간 천장 보고 있어!


11월 1일이 월요일이더라. 이걸 알고 석 달 전부터 설렜다면 나라서 그럴 만하다고 너는 웃어넘길 것 같아. 그런데, 나 정말 그랬다.


여기까지가 21년 10월 29일의 기록이야. 그리고 지금, 마저 이야기를 적어볼게.


ㅍ야, 무엇보다 먼저 생일 축하해! 매년 5월 4일은 너와 코난이 태어난 것만도 기쁘고 소중한 날이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으로만 꽉 채워 온전하게 즐겁기만 했으면 좋겠어. 5월 4일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잖아!


얼추 두 달 만에 만나 넷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대뜸 네가 그랬지. 내 단점이 뭐냐고, 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단점이 없는 것 같다고 말이야. 정말이면 정말 좋겠다. 외적으로 보자면, 한국 여성 평균보다 작은 키를 가졌어. 기분을 얼굴에 적어놓고 다니는 수준으로다가 티가 잘 나는 사람이야. 눈치가 없는데 눈치를 안 보지. 관심 있는 게 아니면 놀라우리만치 무관심해. 뭐든 곧이곧대로 잘 믿는 편이야.


그런데 말이야, 사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ㅍ야,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해. 그리고 이건 너무 큰 문제야. 내가 만약 구름이라면, 네가 더운 날 시원한 소낙비를 내려주고 싶을 거야.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비가 오면 몸이 까라져서 견딜 수 없다고 할까 봐. 의도치 않은 걸로 상처 주는 것도 싫은데, 의도해서 상처 주는 건 더더욱 싫다고 동네방네 말하고 다니는 내가 모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해. 그리고 언제고 이럴까 봐 겁이 나.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에는 지긋지긋할 새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하는 게 생기곤 해. 해망쩍게 뭐 하는 걸까, 나는.


나는 벌써 내 시간과 체력과 마음에 한계를 느끼고 있어. 지금 좋아하는 것들에 할애하는 것만도 버거울 때가 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끝도 없이 늘리기만 하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건 아닐까. 하다가 말 거라면 숫제 안 하는 게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던데 내가 남들처럼 그런 말을 하는 날이 오면 어떡하나. 이런 고민이 벌써 여러 날이야. 할까 말까 할 때 일단 해보자,라고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나는 벌써 부러워. 참 희한하지.


"언니는 너무 다정한 사람인데 모든 방을 보여주는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이런 대화가 나오더라. 이 말을 하던 미정의 붉어진 두 눈에 담긴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본인도 상대방에게 모든 방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어. 원룸이라거나 본인도 모르던 비밀의 방이 있던 거면 어쩌려고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까. 신기하더라. 사람은 참 다양하구나 깨닫는 게, 나는 초대해준 것만도 기쁠 것 같은데, 꼭 모든 방을 보여줘야 하나 싶고. 그냥 열어준 방에만 머무르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음의 방에 들이곤 해. 그런데 그때마다 어떤 방을 열어주고 어떤 방은 닫아뒀나 따로 헤아린 적은 없었어.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넓기만 하고 깊지 못한 걸까?


비슷한 맥락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져 버려. "내가 당신을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지만 어쩌면 당신은 단지 대수롭지 않을 뿐일지도 몰라. 아무리 들어보려 해도 내가 문을 두드리기 전엔 아무 소리도 나질 않네."라는 가사를 듣고 마음이 저렸어. 누군가 두드리기 전에 내가 먼저 오라고 하지 않아서 다치게 한 사람이 없었나 무서워졌는데, 이제 나는 내가 모든 방을 보여주지 않은 것 같아 혹시나 누가 외로웠을까 벌써부터 걱정이야.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나의 주변이 넓어질 때마다 즐거운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모르겠고, 일단 오늘은 이런 나로 지내볼게. 하고 나서야 깨닫는 나는 경험쟁이니까. 당분간은 이런 단점을 지닌 채로 더 널따란 사람이 되어볼게. 지켜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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