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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7. 2022

2022년 04월 08일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안녕, 나의 대문자 B. 잘 지내니? 만나고 싶다기보다 어디서 뭐하나 그냥 보고라도 싶다.


너는 안녕해? 너의 매일은 안녕하니? 커지는 일교차에 외투는 잘 챙기고 다니니?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어깨 한 켠이 젖지는 않았어? 현대인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게 더 드물다던데, 하루에 밥은 몇 끼나 먹니? 코시국인데 코로나 잘 피하고 있어? 만약 걸렸다면 다 나았니? 앓는 동안 많이 아프지는 않았어? 목이 까끌거리고, 후유증으로 후각 기능이 저하되거나 피로감이 오래가는 경우가 많대. 걸렸다면 얼른 쾌차 바라고, 후유증 없이 말끔하게 다 나았으면 좋겠다.


사무실 근처에서 화재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괜찮은가 물어본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 연락이 뜨문뜨문해지고 있던 차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는 조금 뜨끔했어. 나의 무충함이 실망스러워. 할까 말까할 때 보통 많은 것들을 해보자, 쪽인 나마저도 사람은 특수해서 몸을 사리게 돼. 나와 다를 수 있으니까. 일방적인 연락이 부담이 되면 어쩌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면 어쩌나, 그런 까만 고민들. 그러다 언제나처럼 네 생각이 났어.


초등학생 때 너는 청소년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어. 왕따 당하는 친구들은 너랑 놀았잖아. 마지못해 노는 게 아니라 네가 먼저 같이 놀자고 그랬지. 주변에서 다 놀지 말라고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네가 같이 놀자고 그래서 나도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놀았어.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오랜 시간을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거야. 우리 집에 놀러 가자고 하면 이불 개야 해서 싫다고 그랬었어. 기억나? 우리 어머니께서 너 오면 곧잘 너랑 나한테 집안일을 시키셨잖아. 다 크면 우리 집에 시집오라고 그러셨는데, 넌 진짜 매번 고민 한 번 없이 싫다고 그랬어.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앞과 뒤가 다르지 않아서 널 만나는 내내 이질감 같은 게 없었어. 너랑 노는 날에는 어김없이 일기장에 오늘은 재미나게 놀았다고 적혀 있었어.


중학생이 되어 네가 갑자기 전학을 가고, 너에게 직접 듣지 못한 너희 집 가정사가 풍문으로 떠돌면서 연락이 뜸해졌지. 네가 연락을 주지 않았고, 나도 구태여 연락을 하지 않았어. 내가 연락을 하면 네가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낄 것 같았어. 그러다 멀어질까 겁이 났어. 그때 너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볼 걸.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기보다는 일단 마음을 부딪쳐보는 게, 그것만도 의미가 있었을 텐데. 학교에서 만나 매일 크고 작은 사정들을 나누던 우리는 생일에만 문자를 주고받는 동창생이 되었어. 그마저도 대학생이 되어서는 일방적으로 나만 보냈지.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서는 나의 일방적인 마음이 너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먹지 못하는 음식을 선물 받은 것처럼 진심이라는 이유로 너에게 내 마음을 강요했던 게 아니었나,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 네가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연락을 주지 않는 게 서운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매년 네 생일이 다가오면 마음속으로만 무한한 너의 평안을 바라는 이유는 서운하거나 화나서가 아니라 제때에 전하지 못한 안부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서야. 미리 축하 인사 전할게. 내년에도 생일 축하해.


갑자기 네 생각이 나는데, 네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이렇게 괜히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적어봐. 크고 곧은 대문자 B야. 초등학생 때 우리 집 오빠 방에서 만화 노래로 재생목록 가득 채워 고래고래 노래 부르던 거 기억이나 날까? 우리 집 텔레비전에는 투니버스 나오지도 않았는데, 네 덕분에 나는 꽤 많은 만화 노래를 알아. 한 번 보지도 않은 환상게임 오프닝 노래 1절 가사를 지금도 줄줄 왼다. 어릴 때 교육이 이래서 중요한가 봐. 시간이 지나도 그런 건 안 잊혀지더라. 그리고 너랑 부르던 엔알지에 “할 수 있어”가 떠오를 때 나는 조금 울고 싶어져. 그래도 울지는 않아. 나는 너처럼 씩씩한 아이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듯이, 경험하고 나서야 제대로 깨닫는 것들이 있잖아. 나한테는 나미님이 “슬픈 인연” 노래가 그래.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저 노래를 실감할 수 있니? 나는 절절하게 실감해. 그리고 매일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라고 혼자 대답을 해. 내가 너한테 당장이라고 연락할 수 없는 이유를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저 노래 가사 같은 거겠지. 우리가 주고받던 우정은 열다섯까지였고, 그 후로는 나 혼자 쌓은 거니까. ‘지금’의 나와 네가 만나도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할 텐데, 그렇다고 ‘그때 그 시절’의 우리는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 시절의 너’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너’는 있잖아. ‘지금의 나’도 여기 생생하게 존재하고.


최근 끝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드라마 결말 관련해서 인터뷰를 읽었는데, 머리가 띵하고 울리더라. “가져봤다는 게 중요한 거지. 빛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질 수밖에 없는데, 우린 태양이 아니니까 바래질 수밖에 없는데, 그 빛을 쥐어봤다는 게 소중하고 중요하다.”  너와의 추억을 가져봤다는 게 나한테는 너무 중요한 것 같아. 내가 태양이 아니더라도 너와 함께한 그 시절은 분명하게 태양이야. 도무지 바래지를 않아. 빛을 쥐어봤다는 것만도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저 인터뷰에는 반만 공감해. 왜냐면 나는 언제고 ‘지금’의 우리가 함께하는 새우정을 그리고 있거든. 완벽한 행복을 느껴봤으니 그걸로 되었다, 는 석연치 않아. 나는 언제고 우리의 새로움을 고대해. 우리 이야기에 쉽게 결말을 내고 싶지 않아.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새로움에는 언제나 가능성이 있을 테니 난 쉽게 낙담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너의 오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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