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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7. 2022

2022년 04월 13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2018년 3월 7일 오후 10시 06분 메모
지금 너무 좋다.
나 지금 조금 노곤 노곤한데 이불 안은 따뜻하고 창밖으로 빗소리 난다.
이 수많은 빗소리 들으면 그 누구라도 외롭지 않게 잠들 것 같다.
봄비는 다정하다.


오늘 저녁 먹고 어머니랑 빗길 드라이브를 하는데, 갑자기 오래전 메모가 생각났어. 갑자기, 는 아닐 거야. 빗소리가 다정해서 그날 그때의 기분이 자연스레 떠올랐어. 그날은 드물게 내가 낮잠이 들었고, 수많은 빗방울 소리에 잠을 깬 밤이었어. 단잠을 깨워 야속한 마음은 전혀 일지 않고, 그냥 내 주변을 감싼 빗소리가 그렇게 반갑고 다정하더라. 여름 장마는 감당하지 못함을 전제로 한 속수무책의 느낌이라면 봄비는 두보의 유명한 시 <춘야희우>에 나오는 ‘호우지시절’이라는 구절처럼 글자 그대로 좋은 때를 알고 내리는 기분이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라니! 새삼 근사하다. 나까지 말을 보태지 않더라도 비는 뭐랄까. 뭔가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황당하리만치 운치가 있잖아.


호우지시절.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좋은 비가 때를 알고 내리는 게 아니라 좋은 때에 비까지 내리니까 더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 사실 좋을 때야 좋고 좋고 좋지.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좋아하면 다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는 없으니까. 좋은 너, 좋은 나, 좋은 우리, 좋은 시절, 좋은 비. 아,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비가 오지 말았으면 할 적마다 비가 온다 해도, 비가 오면 비가 온 대로 좋았어. 언제나 마침내 그리고 때마침 내리는 비.


말이 너무 길어졌다. 흐리면 흐린 대로 즐거운 오늘이면 좋겠다. 내 사랑.


오늘의 보탬은 ‘비 오는 날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야.

준비물 : 노란 우산, 레인부츠


1. 노란 우산

1-1. 노란 우산을 든다.

1-2. 노란 우산을 빙그르르 돌리며 걷는다.


2. 레인부츠

2-1. 레인 부츠를 신는다.

2-2. 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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