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언어 - 정보구조

언어 사용자는 상대방의 눈치를 본다

by 사오 김 Sao Kim
A: 수화에서는 표정이랑 입모양이 중요하잖아,
B: (처음 듣는 표정)
A: ('아, B는 모르는구나') 표정이랑 입모양이 중요하거든? 그래서 농인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소통하기가 불편하대.


(여러 개의 실제 대화로부터 재구성한 가상 대화)


A는 말을 하면서 B의 배경지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첫 줄에서는 B가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고 '-잖아'라는 어미를 사용했고,

B의 표정을 통해 모른다는 것을 눈치채고 '-거든'으로 어미를 바꾸어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요?


사실 "수화에서는 표정과 입모양이 중요해서 농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소통하기가 불편하대"라고 한 문장으로 말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는 다 담겨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상 대화에서 저렇게 말을 하면 청자는 소화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사람이 단위 시간당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표정과 입모양이 중요하다'라는 처음 듣는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기에도 버겁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정보와 관련하여 '농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소통하기가 불편하다'라는 또다른 새로운 정보를 틈없이 바로 줘 버리면 더욱 여유가 없어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말을 하면서 청자가 내용을 잘 알아듣고 있는지를 종종 신경씁니다. 청자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자가 전제와 배경을 이해한 상태로 잘 알아듣고 있다고 판단할 때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즉, 청자가 모를 것 같은 새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과, 청자가 이미 알 것 같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위에서 '-거든'은 전자, '-잖아'는 후자에 속합니다.)


이렇게 화자가 청자의 인지 상태를 고려하여 언어 형식에 반영하는 것을 언어학에서는 '정보 구조(information structure)' 또는 '정보 포장(information packaging)'이라고 하여 하나의 하위분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도 무작정 많은 정보가 우다다다 쏟아지는 글을 읽으면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무던 애를 씁니다.


말을 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말을 하는 목적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 목적이 잘 달성될 수 있도록 화자가 최적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꽤 잘 사용하여 정보 전달이라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는 합니다.


'-잖아'와 '-거든' 말고도 이러한 정보 포장 전략은 많은 언어현상에서 드러납니다.


'-은/는'과 '-이/가'

'it ~ that 강조용법' (cleft, 분열문)

(영어) 문장 강세와 억양

...


위에 나열한 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구조를 담는 것인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어 보겠습니다.


정보구조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은

- Knud Lambrecht(1994)의 Information Structure and Sentence Form,

- 최윤지 선생님의 2016년 박사논문 '한국어 정보구조 연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등의 자료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류 지적이나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 사실 상대가 모르는 정보를 특별하게 포장하는 것은 직관적이지만,

상대가 아는 정보에도 특별한 포장을 하는 것은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미 상대가 아는 정보에도 특별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이제부터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거야'라는 단서를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청자의 마음에서 그 정보를 '활성화'시킨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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