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인의 기록 n번째
여름의 살결 - 사피엔
밤의 공기엔 아직
여름의 살결이 남아 있었다.
달빛조차 끈적였고,
젖은 바람은 목덜미를 훑으며
숨결을 핥았다.
나는 그 숨 하나에도 목이 타는 듯했다.
그와 함께였던 계절.
기억은 늘 몸이 먼저 떠올린다.
그의 손끝이 내 어깨를 스치던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가장 노출된 여자였다.
그의 입술이 내 목을 더듬을 때마다
심장은 터지는 별처럼 쿵, 쿵—
그 불꽃 속에서 나는 존재의 가장 안쪽을 느꼈다.
그의 숨소리,
뜨거운 손바닥,
내 허리를 감싸던 늙지 않는 욕망.
그 모든 것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이 기억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이건 나만의 우주 실험실이었다.
사랑과 죄책, 쾌락과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한 침대에 눕는,
은밀하고 치명적인 실험.
끝냈다고 말했지만,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
내 피부는 여전히 그의 체온을 기억하고,
내 사유는 아직도 그 여름의 언어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기억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덮쳐오는 관능이라는 것을.
제주의 바람,
동백꽃의 진홍빛,
풀벌레의 울음과 바닷내음—
그 모든 감각은 아직 내 안에서 살아, 실험 중이다.
나는 오늘도 자문한다.
사랑이 욕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쾌락과 죄책은 왜 늘 같은 침대 위에 누워 있을까?
그리고 인간은,
과연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내 안을 쓰다듬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 뜰엔 아직, 여름이 남아 있다.
그의 손길처럼 달아오른 기억의 살점들—
상처나고 피 흘리며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