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의 하루

강철의 심장 위에 그려진 예술

by Sarah Kim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온전하게 살겠다는
선택을 하자. 그렇게 여행은 시작된다.
오프라 윈프리


멋진 하루를 온전히 함께 해준

고마운 당신에게 !


디트로이트는 한때 자동차의 도시였고, 쇠락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활의 에너지가 숨 쉬는 곳이다. 그 도시의 심장 한가운데, 마치 시간의 보호막 속에 존재하는 듯한 건물이 있다. 바로 디트로이트 미술관, 혹은 현지인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DIA(DIA Museum)다.


DIA 정문에 자리잡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입구를 지나 대리석 복도를 따라 들어서면, 정숙한 고요함 속에 작품들이 속삭인다. 고흐의 자화상부터 프랑스 인상주의의 부드러운 빛, 이집트 미라 옆에 놓인 고대 문명의 유물들까지—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예술의 만찬이 차려진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거대한 시간의 간극을 느끼며, 타이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 흥미롭고 놀라운 여정을 무척 즐기고 있다.



그날,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어느 회화도, 조각도 아니었다. DIA 중심에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곧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Detroit Industry Murals)였다.


압도적인 크기의 프레스 기계와 노동자들의 근육질 팔, 금속의 광택과 인간의 땀방울이 뒤섞인 이 프레스코화는 단지 “산업”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서사이자 신화였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들이 불꽃 대신 쇳물을 쏟아내는 풍경. 하늘에는 천사 대신 모터와 기계부품이 둥둥둥 떠다닌다. 와우!


천장을 올려다보면, 리베라는 천장까지 한 치의 여백 없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기계와 인간, 신과 과학이 대립하는 듯하면서도 공존하는 이 장면은, 그 자체로 20세기의 철학서였다. 나는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통창의 천장으로 햇살이 들어와 낯선 도시의 방문에 현실감을 잃었다. 예술이란 결국, 인간의 노동과 신념에 대한 경배일까.

그 외에도 이 미술관은 흑인 역사와 문화를 다룬 전시, 아시아·이슬람 미술품들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특히 조용한 고딕 홀 한가운데에 앉아 있노라면, 세상과 격리된 시간 속에서 예술의 숨결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미술관 카페에서 친구와 가벼운 대화가 좋았다. 다시 정문을 나서려 할 때, 문득 시선이 멈춘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와, 근데 로댕의 진품조각상일까? 친구에게 의문을 토했던 그날의 기억.


DIA의 상징처럼 우뚝 선 그 청동 조각은, 단지 철학자의 고뇌가 아니라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집념처럼 보였다. 로댕이 표현한 건 단순한 사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쇠락과 재건, 고통과 창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묻는 자세였다.


나는 그 앞에서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생각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예술은 이렇게 사람을 멈추게 하고,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내가 사랑한 로댕


그날, 미술관을 나와 디트로이트 거리를 드라이브 했다.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긴 적막한 공장지대는 이제 벽화와 창작 스튜디오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붕괴를 지나온 도시가 어떻게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지를 디트로이트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문신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새겨지는 것처럼.


디트로이트 도시 산책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이 도시를 처음 소개해준 소중한 친구의 환영이 있었다. 공항에서의 따뜻한 인사, 미술관까지의 동행. 낯선 도시를 이방인으로 걷지 않게 만들어준 그 존재 덕분에, 디트로이트는 단지 여행지가 아닌 경험의 도시가 되었다.



시간이 도시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도시가 품은 예술과 우정,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유의 시간은 무너지지 않는다. 디트로이트는 그 모든 것—쇳가루와 붓자국, 벽화와 침묵, 그리고 소중한 이의 따뜻한 환대까지—를 품은 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매 순간을 소중히 보내기로 마음먹고
마치 지금이 내게 허락된 시간의 전부인 양
온 힘을 다해 즐기기로 결심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카고 도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