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8
어제 아침, 남편이 갑자기 소리치며 말합니다.
"여보!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나 봐!!!"
평소에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남편이기에 놀랐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고 이렇게 반응해 봅니다.
"에?????"
남편이 웃음기를 머금고 말합니다.
"아니, 공기청정기고 체중계고 의자고 테이블이고 하나씩 없어져~! 집이 점점 비어가~"
저 우스갯소리를 하려고 호들갑 연기를 하다니, "으이그~" 하고 같이 '씩' 웃습니다. 범인을 알고 있거든요.
범인은 바로, 저입니다. 요즘 한참 열심히 당근 하는 중이었습니다.
우스운 이 문장이 한동안 글을 못쓴 핑계입니다. 물품을 판다는 게 생각보다 중독성이 꽤 강합니다. 한참 브런치 글 쓸 때는 수시로 브런치 앱을 클릭했는데, 당근을 시작하고 나서는 당근 앱에 들어가서 하트 찜은 얼마나 눌렸는지 살펴봅니다. 이게 가격 선정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카톡 알림도 무음으로 해놓는 저인데 당근채팅 알림은 진동으로 바로 알 수 있게 해 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더 팔게 없는지 여기저기 집안을 더 뒤져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물론, 떠나기 전에는 다 정리해야 하는 물건들이 맞지만 제가 생각해도 지난 1주일은 뭔가에 홀린 듯이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당근에는 3가지 요소가 다 있습니다.
관심(하트찜)과 소통(채팅) 그리고 보상(돈) 말입니다. 도파민이 분출되는 요소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굉장히 일시적이고 보상(돈) 또한 원래 물건의 가치에 비해 낮습니다. 아무리 상태가 좋더라도 물건이라는 건 한 번쓰고 나면 가치가 급격히 줄어드니까요. 30-50%는 줄어듭니다. 사용감이 있다면 더더욱 줄어들 테죠.
팔기 위해 보상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저를 발견합니다. 찜만 많고 채팅이 없으면 가격을 다운시켜 봅니다. 사실 좀 더 기다려보면 더 필요한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걸 아는데도 당장의 도파민을 얻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네, 지난 1주일 그랬습니다.
당근은 필요합니다. 사실, 감사한 일이기도 하죠. 떠나는 마당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고 , 비록 쓰던 거이긴 하지만 그걸 가치를 매겨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죠. 당근은 죄가 없습니다. 하하.
2월 말이나 3월 돼서야 시작하려고 했던 당근을 시작한 이유는 첫 번째, 시간이 될 때마다 물건을 정리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아서, 두 번째, 비용을 내면서 떠날 때 필요한 물건(아이패드, 노트북, 운동복 등등)을 사느니 있는 물건을 정리해서 돈을 벌면서(?) 물건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였습니다.
1주일 진행해 본 결과, 이 판단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1주일이지만 집중해서 판 결과 꽤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계속 글을 쓰고자 했던 마음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글을 쓴다는 건 그만한 도파민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으니까요. 점점 미뤄지고 미뤄지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브런치에 글은 안 쓰고 당근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은 무서워져, 이렇게 급하게 글을 써 내려갑니다. 업무를 위해 타자를 치는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위해 타자를 치는 이 느낌을 잊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지금까지 방황하고 온 저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줍니다.
당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직 정리할 물건이 많습니다. 당근의 중독성을 알았으니 좀 더 거리를 두고 우선순위를 뒤에 두려고 의식적으로 환경적으로 노력해야 되겠지요. 일단, 2월까지는 중단해 볼까 합니다. 어쨌든 당근은 계속될 테지만, 글쓰기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당근만큼 보상이 강력하지는 않지만 다시금, 글 쓰는 과정 자체가 제 영혼을 채우는 느낌을 아로새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