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을 평생학습과 연계하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5월 초 고용노동부 장관과 주요 대기업 대표들이 참여한 '대중소 상생 아카데미 업무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에는 포스코, SK에너지, HMM오션서비스, HD현대중공업, 삼성SDI, HD현대삼호, LX하우시스, 세메스 등 8개의 대기업 및 협력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대중소 상생 아카데미란, 대기업이 자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고품질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도 개방하여 공유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교육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기존 진행 사업들이 주로 개별 단기 과정으로 제한되어 체계성과 연속성이 떨어지고 업무 부담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으나, 이번 프로그램은 최소 40시간 이상의 고품질 장기 훈련을 여러 단기 과정으로 모듈화하여 제공함으로써, 실무 부담을 줄이면서도 체계적인 역량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기업은 각 프로그램별로 평가와 이수증을 포함한 역량 인증체계를 개발하여, 동종 산업계 전반에 걸쳐 통용될 수 있도록 하고, 협력사 재직자들의 지속적인 경력 발전과 성장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해 훈련과정의 승인, 운영, 비용 지원 등에서 제약과 규제를 혁신하여 기업들의 자율성을 높이고, 상황에 맞는 훈련 운영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예견된 고용 감소… 생산성 혁신해야
한국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영향이 논의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기반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및 관리비 증가 부담이 커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최대 33만 6천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적인 고용 감소는 특히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며, 경제 전반의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노동, 투자, 생산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한국은 인구감소가 시작되어 이미 노동 요소의 감소가 확정적인데, 이것을 상쇄할만한 투자 자본의 증가나 생산성 혁신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률 앞에 전형적인 저성장의 덫이 놓여있는 셈이다. 자본과 성장이론을 정립한 거시경제학계의 대부이자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Robert M. Solow)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려면 ‘외부적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노동 감소를 상쇄할만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내부 직원의 기술수준과 역량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근로시간 단축을 평생학습과 연계하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근로자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개인의 경력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은 더 높은 기술과 능력을 갖춘 근로자들을 활용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에 학습 끝, 평생 먹고 살 수 있을까?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8조는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있다. 의무교육은 모든 아동이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 기본적인 문해력, 수리력 및 기초 학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여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동질감 형성, 공동체 의식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 최소한 중학교 3학년을 정상적으로 졸업했다면 사회인으로 온전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한국의 대부분 중학교 졸업생들은 추가로 고교 3년을 마친 후 하나의 전공을 골라 대학 학부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국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대학 취학률은 7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략적으로 같은 연령 10명 중 8명은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대략 16년의 교육을 받고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작년 말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은퇴 희망 연령은 65세, 법정 정년은 60세, 실제로 은퇴 나이는 평균 55세로 조사됐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4세이다. 은퇴 이후로도 무려 30년 가까이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셈이다. 한 사람이 20대 초반까지 받은 고작 16년의 학습량으로는 기대 수명까지 전문성을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수입을 일으키기는 어렵다. 특히 기술의 혁신 속도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는 더욱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경제 활동에서 직장 내 평생학습은 더욱 필수적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하여 근로자들이 이를 통해 자기계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교육 및 훈련 비용 지원, 온라인 학습 플랫폼 개발, 유연한 학습 시간 제공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평생학습의 연계는 개인, 기업, 국가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전략으로서, 이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용 및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정책의 세심한 조정과 지속적인 평가가 필요하며, 앞서 소개한 대중소 상생 아카데미 업무협약과 같이 기업과 정부의 긴밀한 협조와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기업, 정부의 협력 중요… 독일의 사례
평생학습이란 정규 교육 과정과 고등 교육을 끝낸 이후에도 평생에 걸쳐 자신의 직장이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메르켈 전 총리가 지휘한 독일의 평생학습 강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모델 중 하나이다. 독일은 지속적인 교육과 기술 훈련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증진시키며,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메르켈 전 총리는 2007년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제로 베이스에서 정부 활동과 예산을 재창조하고, 일자리 창출과 학습 관련 예산을 늘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12년 동안 독일은 6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한국과 비슷했던 고용률도 12%포인트 증가했다.
독일의 이중 교육(Duale Ausbildung) 시스템은 학교에서의 이론 교육과 기업에서의 실습을 결합한 형태로, 청소년들이 직업 기술을 습득하면서 동시에 실제 업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독일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 예산과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경력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평생학습과 직업 훈련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독일 기업들은 정부의 평생학습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직원들이 직업 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직장인들은 최신 기술 트렌드와 업무 방법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고 경력 전환이 원활해져 전체적인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 능력을 증진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일이 높은 고용률과 낮은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경제에서 강력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동시에, 주 52시간 근무 완전 법제화 및 주 4일제 근무의 가능성까지 논의되고 있는 등 근로시간 단축 추세가 HR 업계의 큰 이슈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물리적 노동 투입을 줄이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려면 생산성의 혁신적인 증가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 직장 내 학습과 평생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도 이번 정부-기업 간 평생교육 업무협약 및 계속되는 노동시간 축소 이슈 등 사회 전반의 관련 논의를 계기로 독일의 사례와 유사한 전략을 채택하고, 직장 내 평생학습을 강화한다면 개인의 경력 발전, 기업의 경쟁력 향상, 그리고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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