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직원 경험은 최소화 해야
“요즘 우리같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 징검다리 삼아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기업들이 공채를 줄이고 경력직 채용을 많이 늘렸다던데, 실력이 검증된 중소기업 직원을 너무 손쉽게 채용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억하심정까지 들 정도입니다.”
“중소기업들은 과연 이렇게 힘들게 신입을 뽑아서 교육시키고, 이제 좀 쓸만하다 싶으면 뺏기는 상황을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대기업처럼 급여, 복지를 좋게 만들기는 역부족인데, 지역의 젊은 인재들이 눈에 띄게 줄어가는 상황에서 회사 내 인력 유출 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인 HR연구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접수된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실제 의견들이다. 전통적으로 중소기업들이 자주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대기업으로의 인재 유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대세로서 실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원격 근무나 유연 근무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대기업으로의 이직 선호 현상이 급격하게 눈에 띄고 있는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도 ’공채 후 육성’보다는 곧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수시 경력직 채용을 점차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수요와 공급이 절묘하게 일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 퇴직자가 많다고 해서 실제로 그 인원들을 전부 대기업에서 뽑아가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일자리 이동통계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퇴직한 사람의 82%는 다시 중소기업으로 이직했고, 대기업으로 간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신입이나 주니어의 경우는 더 적을 것이다. ‘신입을 뽑아서 가르쳐놨더니 대기업으로 이직해 버렸다’는 얘기는 사실 퇴직자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희귀 사례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2024년 상반기 대기업 채용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신입직 입사자 중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25.7%였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영진이나 인사담당자라면, 대기업 대비 급여와 복지가 부족해서 자꾸 사람을 빼앗긴다고 여기기보다는, 왜 자꾸 우리 직원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인재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원인은 무엇인가?
중소기업이 이러한 인력난을 겪게 된 데에는 스스로의 잘못이 크다는 의견이 있다. 2022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명 미만 사업체의 평균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했다. 대기업에 비해 딱히 업무량이나 난이도에 차이가 없는데 누가 더 적은 보상을 받고 싶겠냐는 것이다. 심지어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서 ‘직원들은 매일 야근하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데 사장은 회삿돈으로 고가의 외제차를 굴리고 가족과 친적들을 위장 취업시켜 급여를 타내더라, 여러 중소기업을 다녔지만 이런 회사가 대부분이었다’는 경험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과연 중소기업들은 다 그런가? 사실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일부 부실 기업의 사례를 싸잡아 조롱하는 콘텐츠들이 유행하면서 중소기업 전체에 대한 비호감이 무분별하게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러한 유튜브 영상들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꼭 대기업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댓글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전부가 대기업 직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24년 2월 KDI 보고서는 한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이 전체의 14%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약 770만개에 달하며 국내 전체 기업 수의 99.9%를 차지한다. 개인의 재직 경험은 가치있는 것이지만, 한 두 사람이 일생 동안 아무리 많은 회사를 옮겨 다녔다고 해도 전체 중소기업의 행태를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통계적 표본 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수 백 개의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HR테크의 기업 담당자들이나 컨설턴트들은 대부분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자기가 일구거나 떠맡은 회사의 존립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도에 중소기업들은 평균 10.8%의 매출성장률을 기록했고, 제조업의 경우 27.2%, 서비스업의 경우 26.3%의 기업이 10% 이상 영업이익률을 달성했으며, 163개 기업이 업종별 매출 및 자산기준을 충족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승격했다.
부정적 직원 경험은 최소화 해야
중소기업은 비상장회사인 경우가 많고 영세해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 주목도가 낮은데다 경영에 대한 외부간섭이 적다. 특히 소규모 기업의 경우, 사장마저도 한 명의 엔지니어이거나 재무, 영업 등 실무자로서 회사 경영을 겸임하면서 허덕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젊은 직원들의 이런 저런 불만과 요구는 그저 ‘징징거림’처럼 들리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사장이 힘들다고해서 직원도 같이 힘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든 일화처럼, 법인 비용으로 리스한 차량을 비업무적 용도로 경영진이 사용한다든가 하는 사례는 비단 중소기업만의 문제는 아니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도 만연한 관행이긴 하다. 이에 대해 여러 의견도 많고 번호판 색상을 달리하게 하는 등의 조치도 최근 시행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공자원 사유화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 제고와 함께 입법 및 세무제도 확충을 통해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적 문제에 가깝다.
다만, 이런 사례가 유독 중소기업에서 볼멘 소리로 터져 나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 경영 상황이 어렵다며 직원 보상에는 인색하게 굴면서, 사장은 법인 리스 외제차를 타고 골프 약속이나 다니는 것이 직원들 눈에는 너무나 역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그 어떤 세대보다 공정성에 민감한 Z세대 신입사원들에게는 이러한 광경이 참기 어려운 우울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그렇다고 이미 계약이 돼있는 차량을 위약금 물고 중도 반납하란 얘기냐’라는 등 끝없이 반론이 이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원을 더 잃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너 같은 직원은 얼마든지 다시 뽑을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다른 기업의 급여, 복지, 조직문화를 손쉽게 엿볼 수 있게 된 요즘의 직장인들에게는 우리 회사의 단점 파악이 매우 수월해졌고, 이런 평판이 업계 사람들에게 퍼지는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이처럼 부정적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을 주는 기업은 떠나는 사람들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할 가능성이 현저히 커져 버린 것이다.
긍정적 직원경험의 원천
그렇다면 직원들의 긍정적인 직원경험을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충족시켜야 할 것인가? 대기업 못지 않은 만족스러운 급여와 복지로 직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오래 근무하도록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기본심리욕구,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성은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자 하는 욕구이며, 유능성은 주어진 일들에 능력을 발휘하여 성공적으로 해내고자 하는 욕구, 관계성은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이다.
인간은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즐거움과 흥미,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강렬한 내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게 된다. 맡은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결정 권한을 가질 때(자율성), 맡은 업무를 잘 해낼 자신감이 있을 때(유능성), 그리고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직장 내 대인관계를 맺고 있을 때(관계성), 업무 동기를 더 강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다.
2022년 사람인 HR연구소에서 직장인 439명의 설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신의 일에 대해 가장 만족감을 느끼며 조직에 심리적 애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봉에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장에서 기본심리욕구의 만족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었다. 세 가지 욕구의 충족은 직무만족도의 30% 이상을 결정하는 요소였지만, 연봉 수준에 대한 만족도는 직무만족도의 10%만을 결정했다. 이직 의향에 있어서도 기본심리욕구에 대한 만족감은 연봉에 대한 만족감보다도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직장인들은 급여 수준 때문이 아니라 조직에서의 내면의 기본심리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욕구가 충족되는 사람들은 더 강한 내적 동기, 즉 일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의미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고 응답할 확률이 약 5배 더 높았다. 반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욕구의 좌절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무동기) 상태에 놓여 있을 확률이 약 3배 더 높았고, 업무상황에서 극도의 정신적 피로감(번아웃) 증상을 보일 확률은 약 2배** 더 높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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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eci, E. L., Olafsen, A. H., & Ryan, R. M. (2017). Self-determination theory in work organizations: The state of a science. Annual Review of Organizational Psychology and Organizational Behavior, 4, 19-43
**사람인HR연구소(2022), 호모 라보란스 : 일의 의미와 직원경험을 위한 조직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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