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책 읽기 2] 디자이너의 열한 계단
글을 전개하기에 앞서 디자인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테크트리 리스트는 아님을 밝힙니다. 그보다는 디자인을 시작한다면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필요한 자아(자존감) 정립 과정에 도움이 되는 책 목록입니다. 특히 디자인은 외부의 요구 사항을 시각화시키는 업무 특성상 자아/주체성이 확고하지 않으면 일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지하에 떨어져 있는 자존감을 발견하게 되죠.
자기 주체성을 지키고 보다 능동적으로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알고 다음으로 나를 아는 지식의 힘이 필요합니다. 현상 파악 없이 주관적인 감정만으로 무언가를 자신 있게 주장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가장 좋은 훈련은 사고의 힘을 기르는 것이고, 수단으로는 책 읽기와 글쓰기만큼 전통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 거예요.
디자인 분야의 책을 추천하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첫째, 책이 두껍고 크고 무거우며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책에 디자인을 너무 많이 함)
둘째, 너무 비싸거나 절판되었다. 옛날 책들이다.
셋째, 비교적 최근 나온 책들 중에서도 실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 드물다. (이미 트렌드가 지났다)
넷째, 번역서가 많은데 번역이 별로다.
다섯째, 비닐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
여섯째, 예시의 디자인이 너무 올드하거나 너무 기초적이거나 너무 꾸몄거나 여하튼 별로다.
일곱째, 너무 광범위하거나 너무 세밀한 주제를 다룬다. (특히 기초 분야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디자인 공부는 거의 인터넷 칼럼 읽기, 비핸스의 포트폴리오 분석,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다 하시는 분들을 위해 감히 추천합니다.
-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 3년 차 이상인데 여전히 실력이 애매하다고 느낀다면?
- 디자인에 자신이 없다면?
- 디자인을 설득할 때 논리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이런 분들은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길 권합니다. 저의 글들을 꾸준히 봐주신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UI든 BX든 디자인의 기본은 편집입니다. 편집 디자인은 레이아웃 (그리드) / 타이포그래피(폰트) / 컬러 / 이미지로 4가지 축을 이루고 있어요. 아래는 '편집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책들' 모음집입니다.
[그리드를 넘어서]
난이도 5점 / 추천지수 4점
2006년에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시각 디자인의 교과서 같은 책인데 왜 절판인지 저도 당황스럽네요.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책을 사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타입인데 디자인 책은 그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난이도는 최고점인 5점.
[레이아웃 불변의 법칙 100가지]
난이도 5점 / 추천지수 3점
역시 그리드의 개념을 잡기 좋은 책이며 빌려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좋은 문서 디자인 기본 원리 29]
난이도 3점 / 추천지수 4점
이 책은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인 문고 형식의 책이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공문서 작성하는 분들의 필수 서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마법의 디자인]
난이도 2점 / 추천지수 4점
이 책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 단점이 있다면 예시가 별로지만 그래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낮습니다. 목차 구성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아요.
추천하고 싶은 책이 별로 없는 디자인 서적. 슬픔.
하기로의 '누구나 디자이너가 되는 세상' 브런치 북도 추천합니다. 하하하하하
디자인을 해야겠다 = 포토샵 책부터 사자가 아니라 레이아웃부터 공부하자 마음을 먹으셨다면 1단계에 잘 진입하셨습니다. 2단계에서는 시장과 정치 경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공부합니다. 디자이너가 왜 그런 걸 알아야 하냐고요? 그래야 내 연봉이 왜 낮은지, 사장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디자인 역량을 넘어 비즈니스 사고까지 키움으로써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돼요. 특히 디자이너 집단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치 경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여성이 다수이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을 관찰하지 않으면 피해자 마인드로 가득 찬 집단이 되어버립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상태, 무엇이 옳고 그른가 가치 판단하지 못하고 집단의 의견이나 관행에 동조해 있는 상태입니다. 당신이 노동자로 살지 않고 교양(liberal arts)을 사랑하는 자유(liberty)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2권]
난이도 2점 / 추천지수 5점
인문학 열풍과 함께 했던 지대넓얕 시리즈. 시리즈 1은 역사/정치/경제/사회/윤리 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한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한 구조입니다. 큰 그림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지만 자신만의 가치관과 사고력이 좀 더 확고해지면 반드시 다시 읽어봐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날아가버린 디테일에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서평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난이도 4점 / 추천지수 5점
사피엔스는 인류의 과거부터 현재, 호모 데우스는 현재부터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사실을 산산이 조각내 주었던 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자의 시니컬한 농담과 문장 사이사이에 고개를 내미는 사족들이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는데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대넓얕보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책. 시간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게요.
[공간이 만든 공간]
난이도 3점 / 추천지수 5점
디자이너로서 항상 가졌던 의문이 있었어요. 동서양 예술의 차이점을 다름으로 봐야 할까 우열 관계로 봐야 할까. 서양 문화의 시초가 된 그리스 문화는 문명의 태동부터 미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유럽 여행만 가도 발전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이 책을 읽고 열등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어요.
또한 새로운 생각 /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태도, BTS와 K-CULTURE가 왜 승승장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난이도 4점 / 추천지수 4점
저에게 트렌드 코리아는 자기소개 같은 책입니다. 제가 한 번씩 관심을 가져봤던 아이템이나 현상들이 꼭 나오더라구요. (나는 생각보다 트렌디한 인간이었다)
2022년 버전에서는 나노 사회 / 머니러쉬 / 바른생활 루틴이 / 러스틱 라이프 / 내러티브 자본 키워드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여러분의 트렌드력도 한 번 시험해 보세요 :)
+스타트업 아이템 구상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추천.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의 추월차선]
난이도 3점 / 추천지수 3점
사기꾼 냄새가 낭낭한 이 책을 끼워 넣은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도 간접 체험해 보면 좋겠다는 의도였는데요, 노동자/근로자/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사업가/고용자/투자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한 번쯤은 내 사업을 계획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무능력해 보이는 사장님이라도 이런저런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구나 역지사지해 보는 것이죠!
어느 정도 세상을 파악했다면 이제 자기를 알아볼 시간입니다. 저도 한 때 mbti 덕후였고, mbti 16가지 성격을 죄다 분석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를 탐구하는 시간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온갖 성격 분석 컨텐츠가 난무합니다. 나 자신만큼 알기 쉬우면서 알기 어려운 게 또 없다 - 3단계는 자아를 탐구하는 시간입니다.
[나에게서 구하라]
난이도 2점 / 추천지수 4점
저의 퇴사 바이블입니다. 이 책을 읽고 퇴사할 용기를 얻었죠. 한 번씩 의기소침해 질 때, 나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질 때 펼쳐 들어 의지를 다지면 좋은 책입니다. 내 인생을 경영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수축된 자아로 시키는 것만 하면서 살지 않을 것을 강권합니다.
[미움받을 용기 1권]
난이도 3점 / 추천지수 5점
미움받을 용기의 난이도는 측정이 어렵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세상 쉬운 책이나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읽으면 정말 어려운 책입니다. (실천이 어렵다는 의미) 제목만 봤을 때 그저 그런 위로 에세이 같기도 한데, 이 책은 생각보다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요.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아들러 사상을 이해하는 책이기 때문이죠. 타인과 세상의 평가, 잣대에 잘 휘둘리는 분들이라면 책의 내용을 실천하며 3번 정도는 반복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해탈 가능.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성격을 읽는 법]
난이도 4점 / 추천지수 3점
자기 알기의 마지막 단계는 타인 알기입니다. 재작년, 성격 유형에 완전히 꽂혀버린 저는 제 성격/강점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격/강점을 모두 분석하기에 이릅니다.
제가 모든 유형을 다 공부했던 이유는 타인의 입/출력 사고 체계와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를 알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는데요, 이게 살아가면서 정말 엄청나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에서
저 사람은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약간 독심술 쓰듯이. ㅎㅎ 이 분야를 공부해두면 사람 이해에 너무 도움이 됩니다.
열심히 썼던 mbti 시리즈ㅋㅋ
저와 가장 가까운 성향은 intp이고 e/i와 t/f는 거의 중간에 있답니다. n과 p는 비교적 명확. 사물과 현상 이면에 호기심이 넘치며 여러 정보를 잘 받아들이고 새롭게 조합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 감정보다는 사실 중시. 공감은 후천적으로 학습. 여자 인팁은 2%라는 썰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기로 MBTI입니다. 드디어 intp까지 오게 되었네요!! 인팁 설명글이 특별한 이유.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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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여러 가지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다 보면 끝이 있습니다. 레이블링 게임을 exit 하는 타이밍이 바로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자신을 정의하지 말 것.
니체는 말해요, 철학하지 말라. 쉽게 자아를 규정짓고 어떤 바운더리에 가두어 세상을 편협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피해야 하는 태도라고요. 그보다는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변해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득 채우는 편이 더 좋습니다. 유연함에도 흔들리지 않을 기준은 있어야겠죠. 그 기준은 여러분의 '철학'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의 디자인 철학이 '단순함'과 '균형미'인 것처럼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난이도 4점 / 추천지수 5점
제가 추천하는 리스트 대부분은 한 때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였던 책들입니다. 이 책도 매우 유명한 책이죠 :)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입문자에게 추천합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난이도 5점 / 추천지수 5점
도가니 베다니 현실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자존감 향상에 이만한 책이 없습니다. '세상이 곧 나'라는 일원론을 주제로 과학, 고대 종교, 철학 등에서 근거를 찾는 두괄식 구조입니다. 채사장님은 책의 구조를 참 잘 짜시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책 읽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파운틴 헤드]
난이도 5점 / 추천지수 5점
파운틴 헤드는 예술 쪽을 직업으로 삼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보면 좋을 철학 소설입니다. 철학 소설이지만 스토리가 너무 재밌고 번역도 잘 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패러다임 전복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을 배경으로 건축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지켜내는가가 주요 스토리라인 중 하나예요. 주인공과 대립하는 또 다른 기회주의자 건축가의 심리를 따라가 보는 것도 굉장히 재밌답니다. 여러분은 이상주의자인가요 기회주의자인가요?
여기까지 은근히 많은 책을 소개해 드렸는데 흥미로운 책이 하나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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