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지휘소의 소음이 먼 파도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키라 옆에 앉은 유진은 수십 년간 자신의 영혼을 짓눌러왔던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왜 싸우지 않느냐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통을 당하고만 있느냐고 속으로 몇 번이나 소리쳤는지 모릅니다. 그의 침묵은 어린 제 눈에는 나약함의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오랫동안 그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남긴 침묵이 제 삶을 온통 풀 수 없는 질문투성이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는 고개를 들어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길을 잃은 아이 같은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온 진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옥을, 아버지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이 지옥을 직접 봐야만, 그가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를 이해해야… 제가,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던 제 자신이, 비로소 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침묵 속에 갇혀 무력하게 죽어가야 했던 아버지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그것이 아들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의 근원. 유진은 자신의 가장 깊고 연약한 부분을, 자신과 똑같은 비극을 마주한 남자 앞에서 온전히 드러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