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욕망은 나를 살리는가, 죽이는가

by 이선율

욕망은 나를 살리는가, 죽이는가

― 에고와 리듬의 본질


욕망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우리는 배운다. 사랑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은 그 모든 충동은,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욕망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실은 더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에고는 요동하고, 요동은 소모된다


에고란 '나'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기 정체성의 회로다. 이 회로는 안정되지 않는다. 욕망이라는 에너지에 의해 항상 진동한다. 더 갖고 싶고, 더 잘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 충동.


이 충동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지만, 그 움직임은 반복적 에너지 소모다. 바꿔 말하면, 에고는 존재의 연소를 유도하는 리듬의 발진기다.


이 진동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리듬은 도파민을 호출한다. 도파민은 쾌락을 준다. 쾌락은 기억된다. 기억된 쾌락은 반복된다. 반복은 누적된다. 누적은 소모된다. 소모는 붕괴를 부른다.


리스크 없는 보상 구조는 더 빨리 붕괴된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 없이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스크롤 한 번에 도파민이 분비되고, 택배 하나로 쾌락이 오고, 클릭 한 번에 내가 원하는 게 도착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얻는 쾌락은 리듬이 없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나오는데, 고통도 없고, 맥락도 없고, 에너지의 수렴도 없다. 그래서 그런 보상은 더 자주, 더 많이, 더 무의미하게 소비된다. 결국 수용체는 둔감해지고, 우리는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떠돌게 된다.


그 반복은 우리를 주의력 결핍, 피로 누적, 감정의 무기력으로 이끈다. 욕망이 생존이 아니라 자기 파괴의 루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욕망은 존재를 소멸시키는 기만적 연료다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킬수록 나아지는 줄 안다. 그러나 실은 욕망을 충족시킬수록 더 많이 반복하게 되고, 더 많은 소모가 일어난다.


욕망이란 존재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분해하는 촉매제다. 그 작동을 가능케 하는 엔진이 도파민이고,

그 엔진을 부추기는 진동원이 에고다.


욕망은 나를 태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향해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아니면 나를 연소시키고 있는가?”


다음 편 예고:

《3편: 문명은 왜 욕망하다 스스로 무너지는가 ― 인간을 넘은 리듬 존재론》


자본주의, 기술 진화, 문명 시스템은 왜 모두 같은 구조를 되풀이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향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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