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나는 이 네 글자가 참 좋다.”
경식이 권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옆에서 마찬가지로 권총을 점검하던 명원이 질린 얼굴을 하며 웃었다. 평소보다 비장한 말투인데도 모두 별다른 반응 없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을 보아 매 작전마다 하는 연설인 듯했다.
“폭풍전야. 폭풍 직전이 가장 고요하다는 뜻이지. 두 가지 이유로 좋아해. 첫째, 가만히 이 네 글자를 뱉어 보는 것만으로도 시끄럽던 속이 고요해져. 지금처럼 말이야. 둘째, 이 말에 비밀이 있기 때문이야.”
경식은 권총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심히 살폈다. 윤새는 작전 내용을 곱씹으며 자신의 텅 빈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다른 단원들은 모두 총을 받았을까. 총이 아무리 값비싸다 하더라도 경성에서 꽤나 큰 안경점이라면 아주 못 구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장 어린 명원도 총을 가지고 있으니 나머지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윤새에게는 총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섭섭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작전에 참여하기로 했더라도 월성회의 단원이 아닌 그에게 귀하고 위험한 총을 쥐어 줄 리는 없다. 대신 사격과 체술이 능한 하늘소가 권총으로 무장을 할 테니 혹여나 일본군과 맞붙게 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윤새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작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늘소가 안경원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반. 군인과 맞닥뜨릴 가능성도 반. 그렇게 되어서 맞붙었을 때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반. 그렇다면 반의 반의 반인 것인가. 아니, 애초에 살아남을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는 시점에서 가능성은 더 줄어들지 않겠는가. 윤새의 잡념을 끊어내듯 경식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비밀이란 바로 폭풍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이지. 자아, 이걸 어떻게 아느냐. 그 단어를 만든 사람 또한 결국–”
“폭풍을 견뎌낸 사람일 테니까요.”
명원이 그 대신 문장을 끝맺으며 자신의 권총을 탁 내려놓았다.
“맞죠?”
명원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경식을 보며 빙긋 웃었다. 진운은 그를 아주 아끼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머리를 헝클였다. 그 다정스런 모습이 윤새는 퍽 못마땅했다. 사진관에서는 입꼬리 한 톨 들어올리는 법이 없던 사람이 여기에서는 저리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사진관에서의 9년이 꼭 버려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는 진운을 아예 보지 않기로 마음 먹고 고개를 돌렸다.
“모두 하루에 열 번씩 상상들 했어?”
“예, 다 이겼습니다.”
영원이 차분히 대답했다. 경식은 여전히 권총을 눈으로 뜯어서 분해하듯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눈썹이 가운데로 몰려 구겨졌다가 천천히 짙은 일 자로 돌아왔다. 그는 한결 개운한 얼굴로 휘파람을 휘익 불더니 자신의 권총을 정갈하게 내려놓았다.
“좋다, 이제 이기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