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때 확정적으로 말하는 걸 경계한다.
“아니, 이게 맞아.” 이런 말이다.
그래서내 말 앞에는 늘
‘내 생각에는’, ‘이 상황에서는’, ‘지금 조건이라면’ 같은 말이 붙는다.
결국 내 말은 이렇게 길어진다.
“내 생각에는,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이유로 이 방법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맞다, 틀리다로 확정해버리는 순간 상대가 생각할 기회를 내가 먼저 가져가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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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가 마주한 문제의 핵심은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목표에 도달하느냐에 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값에 어떻게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려면 스스로 상황을 진단하고 가능한 방법을 나열하고 직접 시도해보며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맞아”라는 말이 먼저 나오면 말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는 이미 선언된 말 앞에 서게 되고,
당시에는 반박을 하면서도 그 말의 영향력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틀린 걸까?”
어쩌면 서로의 전제부터 다르기 때문에 다른 말이 나왔을지도 모름인데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 지점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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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넌 아무것도 못하는 애야” 같은 어른들의 확정적인 말이 아이의 가능성을 어떻게 잘라내는지 떠올려보면,
말의 권력 구조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그리고 이 권력은 대화보다 글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글은 즉각 반박할 수 없고, 의견을 조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말하고, 읽는 사람은 침묵 속에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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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복잡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선택지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정, 기회비용과 전제들 속에서 매번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과연 내 입장에서 본 시야만으로 상대에게 “이게 맞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 입장에서 여러 대안을 비교해봤을 때 이게 최선에 가깝지 않을까?”
"내 입장에선 이러해서, 이렇게 느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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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게 맞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이건 이런 감정이다”처럼
확정적인 글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이해는 한다.
미제로 남아 있던 질문에 누군가가 대신 답을 내려주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지점을 경계한다.
그건 내가 내린 결론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내려준 결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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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을 보자면, 고3 때 수학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미적분이 너무 어려워 조금만 힌트를 보면 알 것 같아 정답지를 본다.
'아, 그렇구나.'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풀면 똑같은 지점에서 또 막힌다.
반면 며칠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혼자 고민하며 풀었던 문제는 나중에 훨씬 쉽게 풀린다.
(물론 오래걸렸다. 당시에는 생각이 안나 건너뛰었다가 며칠뒤 다른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이 문제의 실마리가 보인다거나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면 그렇게 어려웠던 문제가 이제는 너무 빤히 보이는 문제가 된다.
이는 정답이 아닌 풀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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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스스로 판단을 미루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소비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는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을 수록 퇴화하고 쓸수록 강화된다.
꼭 정답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정말 정답이란 존재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에 따라 정답이란 무엇일까?란 질문도 가끔한다.
무언가를 꼭 이렇다 저렇다 정의해야하는 것일까?
그 상태 그래도 큰 부스럼이 없다면(또는 부스럼이 오직 나만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부터 나온것이라면)
이러나 저러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도, 열어둔 질문으로도 충분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