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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May 16. 2020

우리는 아직도 신혼이다.

결혼-국제커플-평범은 나랑 멀다.

브런치 선량 작가님의 추천으로 브런치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를 쓸 까 하다가, 나의 결혼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아닌 그냥 평범한 미국인 2013년 결혼했다. 

사실 내 남편은 평범하지 않다. 벌써 결혼한 지 7년 차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신혼이다.

왜 신혼이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신혼처럼 설레는 것은 없지만, 여전히 신혼처럼 삐걱삐걱 된다.

두바이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나는 두바이에 사는 4년 동안 거의 3년을 임신하고 있었다.

나의 두 아이들은 연년생으로, 두바이의 같은 병원에서 2013년 11월, 2015년 3월에 태어났다.

첫 번째 신혼생활은 3개월 정도 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

육아에서 조금 벗어나나 싶었더니, 둘째를 임신했다. 또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의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대학원을 다니느라, 육아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주말에는 나도 쉬고 싶었지만, 뭐든지 함께 해야 하는 남편의 성격 때문에 휴식은 없었다.

아이들이 잘 시간이 되면, 남편은 나가야 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빨리 잠들고 내가 쉴 수 있으니..


우리는 어느새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고,

육아에 늘 지쳐있던 나는 남편이 오기 전에 늘 잠들었다.

큰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시리즈 물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었지만, 나는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육아로 인해 너무 지쳐있었고, 남편과의 대화 시간은 내게 사치였고 내게 짜증을 유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어느새 남편이 없는 생활이 일상이 되어 갔고,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2016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의 버지니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의 이유 때문에..

이 곳은 남편의 고향이자 시부모가 살고 있는 곳이다. (님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이주하게 된 우리는 시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정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남편은 직장을 구하느라 여전히 바빴고, 나는 아이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남편이 저녁에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우리는 넷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저녁을 꼭 6시에 먹어야 하는 시부모의 시간표대로 늘 그 시간에 저녁을 먹었고, 

밥상머리에서 시아버지는 꼭 남편을 깎아내렸다. 왜 그런지 나는 알 수 없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남편은 늘 저녁을 먹고 나갔다.

우리는 여전히 문자로 대화를 나누었고, 남편이 일찍 오는 날이면, 나는 남편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기다렸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2018년 같은 동네이지만, 우리 넷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문제가 닥쳤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부부로서 서로에 대해 잘 몰랐고,

신혼생활이 또 시작되었다. 사사건건 부딪혔고, 아이들까지 있으니, 그 부딪힘의 정도는 더 심했다.

남편은 그러면 혼자 시댁엘 갔다. 문제를 해결해야지 어딜 가는 거니?


둘 다 이 상황만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전히 그렇다.

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진짜 힘들다.

이 지겹고 혹독한 신혼생활은 언제 끝날까? 과연 끝나긴 할까? 


며칠 전,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와 가족이 되고 싶다면, 너희 부모 집에 가지 말라고!! 아이들도 데리고 가지 말라고!!

지금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는데,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진다면, 신혼생활이 어려움에서 조금은 행복한 상태로 옮겨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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