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정도 후 저는 제 그룹을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당시 새로 합류한 강사가 과거의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게 고민을 토로했어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뭔가 효율이 안 나는 거 같다고. 정말 열심히 해도 모자란 거 같다고. 그때 제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수업이죠"
"수업에서도 좀 더 나눠보자면?"
"......"
"수업에 들이는 시간이 당신의 총 시간 중 몇 퍼센트나 될 거 같은가?"
"수업에 관련한 일 중에는 90% 이상일 거 같은데요?"
"그럼 그 10%가 그렇게 고민할 만한 건가? 왜 그 10%를 더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는 거죠?"
"......"
"진짜 고민이 뭐예요? 고민이에요 불만이에요?"
"......"
"혹시 다른 강사들은 당신보다 수업준비에 덜 공을 들이는 거 같은데 왜 잘 되는지 궁금하거나 억울한가요? 아니면 지금보다 수업을 더 많이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업료를 받고 싶은 건 아닌가요?"
그간 조직에서 본인의 열심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아왔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2편에서 열심은 "목표와 결과는 인정과 보상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혹여 부족해도 열심히 했다는 주변의 인정, 엄밀히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과 주변의 위로일 수도 있다" 했었죠.
이때 잘 봐야 하는 게 저 말을 왜 할까, 저게 왜 고민일까, 그의 말이 아니라 행간에 깔려 있는 건 뭘까입니다. 열심인데 고민일 때는 대부분 '불만'이 깔려 있거든요.
그 불만은 본인 기대만큼 뭔가를 받지 못할 때 형성됩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성과를 냈는데 성과만큼 인정 못 받았다는 별개니 열외로 하지요. 성과를 못 낸 건 아니지만 조직의 기대만큼은 아닐 때, 나는 성과를 충분히 냈다 생각하지만 조직과는 갭이 있을 때, 성과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을 때입니다. 특히 첫 번째와 세 번째에서. 하나는 +@로 열심을 부족한 성과를 메꾸는 데에 등장시킵니다. 세 번째에서는 할 말이 그거 말고는 없기도 해서죠.
그런데 전편에서 언급했듯 "열심은 프로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별 가치가 없다"가 씁쓸한 현실 같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인정의 비중은 과정보다 결과에 압도적으로 많이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연차와 직급이 오른다가 아니라 기대 실력이 오를수록요. 이때에도 열심을 스스로 어필하는 건 그래서 오히려 아마추어처럼 보이고 초라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열심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들이는 리소스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절대적인 게 시간이죠. 꼼꼼하게 어디까지 한다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밤을 새고 종일 일한다 하기도 해요. 그런데 융통성이나 유연성이 다소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유연성은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 융통성은 규칙이나 원칙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거나 예외를 인정하는 걸 의미합니다. 열심뿐인 이들은 이 유연성이나 융통성보단 어디서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의 또 하나의 특성이라면 높은 책임감이고, 그 책임감은 "내가 하고 말지"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더라는 겁니다.
① 팀으로 일하든 개인으로 일하든 나의 뾰족함을 확실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② 무작정 일을 다 받고 열심히 한다 해서 그게 베스트는 아니다.
③ 핵심일이 아닌 건 물론이고, 핵심일에 지장을 준다면 그게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선순위가 바뀌게 두어서는 안 된다.
④ 내 시간의 값을 정확히 인지하고 시간과 잔돈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⑤ 비효율이라 판단되고, 이걸 개선할 때 얻는 가치가 훨씬 크다 확신한다면 말하길 주저하지 말라.
⑥ 열심은 프로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별 가치가 없다는 거, 열심보다 성실이 훨씬 중요하다.
⑦ 과정보다 결과라는 말로 과정을 간과하는 게 아니라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하다. 둘은 상관관계에 있지만 인과관계를 갖는 건 아니며 전체로 보면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앞서 최고 강사들의 관찰을 통해 위의 결론을 얻었다 했었는데요.
이들은 본인의 제한된 시간을 어디에 집중시켜야 하는지를 판단해 그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돈을 쓰든 사람을 쓰든요.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본인이 더 잘한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열심'만 있는 사람들은 이걸 못합니다. 본인이 하면 더 빨리, 잘할 수 있기에 일을 못 떼어 내요. 조금 부족하다 해도 일정 이상의 퀄리티가 되고 본인이 가이드를 잘 줄 수 있다면, 나중에 검수해서 빠르게 피드백하여 보완 가능한 거라면 떼어 내는 게 훨씬 빠르고 쉽습니다. 비용이 들 수도 있죠. 열심뿐인 사람들이 못하는 게 또 자꾸 리소스를 아끼려 한다는 건데요.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④에서 말하듯 아끼는 리소스가 잔돈이고 그걸 아끼느라 큰돈을 잃고 있음을 간과합니다.
시간은 가진 자원 중 가장 크고 중요합니다. 이걸 돈과 비교하면 그냥 내가 더 하는 걸로 귀결될 때가 많은데요. 실제로 시간도 돈으로 환산해 비교해야 합니다. 열심뿐인 사람들은 남의 리소스 줄여준답시고, 책임감이 높아서라며 정작 본인 리소스가 새는 걸 간과합니다. ⑤의 상황에서도 그냥 내가 하고 말지로 다 떠안아 어느 순간 병목이 되기도 하죠. (항상 바쁘고 열심인데 느린 사람, 자주 볼 수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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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GD의 유퀴즈 출연 방송분을 보며 이런 글을 썼었어요.
열심만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제게 하소연하던 신규 강사와의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그의 하소연에는 이런 것들이 깔려 있었어요.
저 강사가 잘하는 건 알겠지만 쉽게 일하는 것 같고,
나만큼 열심히 교재연구하고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자기 학생들이 자길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지만 저 강사들은 그런 거 같지 않고,
자기는 매일 이동하면서 수업하느라 고생인데, 저 강사들은 아파트 한 동에서 편하게 수업하는 거 같고,
잘하는 것도 알겠고 이미 유명한 것도 인정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만큼 못 받는 건 싫고..
1편에서 어느 수학 강사에게 피드백했던 내용 기억하시나요?
1. 당신이 얼마나 열심인지에 관심이 없다.
성실은 당연한 거고 열심은 다르다.
2. 당신이 학생에게 얼마나 애정이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
얼마나 책임감 가지고 아웃풋을 내느냐만 관심이 있다.
3. 막연히 성적을 올려왔다에 관심 없다.
그래서 얼마나 올려 어느 대학에 보냈느냐에 관심 있다.
4. 당신이 수업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관심 없다.
몇 시간, 몇 회에 얼마 받고 있느냐에 관심 있다.
5. 당신이 학생들에게 열정적이라 몇 시간씩 더 해주고 있는 거에 관심 없다.
오히려 매우 부정적이다. 고3인데 수학만 공부시킬 거냐.
정해진 시간 내에 목표했던 진도를 제대로 나가도록 잘 가르쳐야 하고
다른 시간엔 다른 과목 공부도 하게 해줘야 한다. 당신은 아이의 시간을 뺏고 있다.
그들은 이미 당신이 열심인 그 시절을 지났고, 그게 데이터와 암묵지로 충분히 쌓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보다 더 많은 수업을 하고 있고, 훨씬 높은 가격으로 수익을 높이고 있다.
당신이 직접 교재를 매번 만들 때 그들은 가이드를 주고 아르바이트생을 써서 그걸 검수해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시간을 더 쓴다. 그들이 편하게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차를 사든, 택시를 타든, 기사를 쓰든 이동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줄인 리소스를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시간표 배정 시 동선 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내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 지를 얘기한 적이 없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와 학부모들이 그들이 올린 성적을 보고 그들에게 제안을 한다.
교통비를 아끼고 싶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걸로 얻는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크다면 과감히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걸 모를 때가 많습니다. 파이도 키우면서 돈도 아끼면 최상이겠지만 보통은 정작 큰 건 놓치면서 잔돈을 아끼는 데에 집중하죠.
정말 성장하고 인정받고 싶다면 그래서 '방법론'과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금전적 리소스에 시간을 간과하지 않는 의식적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열심보다 결과, 결과만큼 과정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그 과정이 '열심'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효율과 효과성 측면에서 뭘 했는지가 중요해지는 거지요.
이걸 고민하고 적용해보다 보면 유연성과 융통성은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나의 사고와 세계를 키우는 키가 될 거고요.
프로가 되고 싶다면 '열심'보단 페이스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과낼 수 있는 '성실'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