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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Aug 16. 2021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뭐가 다르냐구요?

부제: 그만 물어봐!

10년 넘게 다닌 제조 대기업을 나와 금융 및 IT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이 기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뭔가 하면 "대기업하고 스타트업하고 뭐가 달라요?"일 거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커녕 이제 한 회사 좀 적응한 정도이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대기업도 한 회사만 다녔으니 그 또한 일반화할 수 없다. 


브런치나 각종 매체에 이 질문에 대한 선배 경험자들의 글들이 많지만 그들도 딱 자기들이 다닌 회사 만큼의 경험일 뿐이다. 다만 내가 어느 세상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만나는 이들의 범위도 그 언저리에 있으니 비슷비슷 하구나 하며 생각을 말할 뿐. 


출처: http://asq.kr/ZuG6m


내가 다녔던 이전 회사는 전자부품회사였다. 

전반적인 큰 틀은 비슷하다 해도 중공업, ICT, 화학회사 등 업종에 따라 같은 대기업이라 해도 조직문화의 디테일엔 차이가 꽤 있다. 스타트업은 아무래도 IT 계열이 대부분이다 보니 결이 비슷하게 가는 경향은 대기업보다 큰 것 같고. 


이직이란 건 그냥 다 똑같다.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는 그냥 다른 거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중공업에서 ICT로 왔다 해서 "중공업이랑 ICT 회사랑 뭐가 달라?"라 묻지 않는다. 스타트업도 그렇지 않나?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와도 그닥 묻진 않는다. 

그런데 대체 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온 사람들에겐 이걸 이리 많이 묻는 걸까..

어쩌면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오는 건 모래사장에 모래 하나 옮겨온 정도이나 스타트업에 대기업은 돌맹이 정도 되어 그렇진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해본다. 


다시 돌아가 이 흔하고 이젠 식상할 질문에 내 답변도 진화해 간다. 

처음엔 Growth, UX, PO, SaaS, Front-end, Back-end 등의 용어 자체가 생소했다. 이전 회사의 SW 조직은 부품회사다 보니 모듈, AUTOSAR, 구동제어알고리즘, 신호처리 데이터 같은 용어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백엔드 채용공고를 쓰며 NoSQL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는데, 3D 프린터를 장난으로 삼디프린터라 부르곤 하던 지인이 이걸 내게 '노에스큐엘'이 아닌 '엔오에스큐엘'이라 읽어 주는 바람에 몇 달 간 엔오에스큐엘이라 말할 정도.(내가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은 후 그 사람 멱살 잡을 뻔)


우리 회사만의 메신져, 인트라넷, 채용 사이트 등등 내에서 일하다 Slack, G-Suite, Notion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들도 당장의 차이였다. 그 다음 단계가 시스템과 체계화 이전의 일하는 방식이었고,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충격에 가까운 건 채용시장이기도. 그러나 이제 물으면 나의 답은 하나 더 나아간다. 

바로 나를 둘러 싼 사람들의 시간과 속도, 그리고 꿈의 결이라고.  


대기업에 온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성실히 학업을 마치고 영어 성적을 따 면접을 본 후 입사한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1주, 길게는 4주 간 입문교육을 받는다. 그 후에도 배치된 사업부 입문교육을 또 받고, 재직 내내 이런저런 교육을 받으며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단계를 밟는다. 

요즘이야 직급체계를 간소화 하는 게 자리 잡아 3~4단계로 줄었다지만 이전 기준의 직급별 진급 연한은 신입에서 부장까지 오는 데에 빠른 회사가 10년(석/박사로 시작해 발탁진급을 계속 한다면?), 보통은 20년 가까이 걸린다. 차부장을 단다 해도 팀장이라는 리더십 포지션으로 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나보다 선배들이 비직책으로 수두룩했다. 겨우겨우 팀장을 달아도 거기에서 임원으로 가는 건 또 그런 바늘구멍이 없다. 대부분의 부장님들은 고참부장으로 퇴직한다. 

정말 일 잘한다, 훌륭하다 평가받는 구성원의 가장 큰 보상은 발탁진급, 남들보다 좋은 고과, 그 고과 기반의 좀 더 높은 연봉 인상률, 가끔은 인센티브를 받고 비싼 교육 혹은 선발 교육 대상자로 뽑히는 거 정도. 

모이면 부동산 얘기가 주를 이루고, 사내 다른 사람, 다른 조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스타트업에 오니 20대, 30대 초중반의 대표님들이 수두룩하고 3년차만 되어도 잘하면 C-Level, 천정부지로 솟는 몸값, 또 누군가는 스톡옵션 대박이 났다더라, 누구는 강의 하나 찍고 억대로 벌었다더라는 걸 흔히 보고 듣는다. 이직 로또라 부르는 이직만 하면 그냥 연봉이 15~20%씩 뛰는 이직테크도 흔하고.

'조직도'조차 대외비로 엄격히 관리하는 대기업과 달리 다들 우리 회사, 나는 어떻게 일했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업무 노하우들을 여기저기에서 공유한다. 재직자들이 다른 회사 유료 멘토링 하고 다니는 사례도 흔하고 컨설팅도 하고 다닌다. 이 모든 게 처음엔 너무 다른 사고방식과 상황이라 '보안 의식이 없는 건가, 경업/겸업 금지 체계가 없는 건가' 등의 의문 투성이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이제는 주객전도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이런 공유와 활동이 한편으로는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들의 평균 연령은 25~29세에 몰려 있다. 사원인 3~4년 간은 말 그대로 사원의 일을 한다. 대리 정도 달면 좀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하게 되지만 보통은 과장 정도 되어야 프로젝트 리딩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 그럼 최소 5~10년 간 과장까지 올라가는 데에 소요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그 나이에 이미 창업을 2~3번 한 사람도 많고, 5년이면 인생이 바뀐 이도 흔히 볼 수 있다. 전엔 기획부서는 기획자로,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 R&D 연구원들은 자기 연구분야에서의 전문성 추구에 집중되었다면 스타트업에 와서는 "나중에 제 제품 만들고 싶어요, 사업하고 싶어요"라고 면접에서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대기업에서 면접 시 "사업하고 싶어요"라 한다면 마음이 콩밭에 가있고 이직할 사람이란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대기업에서는 이것저것 해 본 사람들의 이력서에 하나를 꾸준히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본 도전적 인재가 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리더가 되기까지 당연했던 시간이 스타트업에서는 너무나 느리고, 사십대 스타트업 어린이는 10년, 20년 어린 이들의 성공이나 도전에 위축되기도 한다. 

다른 더 좋은 대기업으로 이직하거나 회사에서 빨리 인정 받고 승진하는거, 적어도 3년 이상은 한 회사 다니고 가는 게 아니라, 내 사업 하고 싶은 이들 혹은 경력을 이직을 통해 빠르게 이력서를 채워가는 이들이 흔하다는 것도 다르다. 대놓고 보상처우를 요구하는 거나 자기 꿈을 말하는 이들을 접하고 이른 성공, 그 성공의 스케일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쉽게 접한다. 청약보다 투자라는 개념을 흔히 접하는 것도. 


대기업에도 주도적이고 공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고 임원이 된다. 

스타트업 시선으로 마치 구태의연하고 답답한 듯 일하는 그들도 오랜 시간 탄탄히 누적되어 가는 시스템과 제도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한 일상을 살아간다. 아직 그 정도 규모를 경험한 적 없는 작은 회사, 짧은 업력, 미흡한 체계와 시스템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는 거다. 

모든 건 일장일단이 있다. 그 체계가 자율성과 도전을 제한하듯, 미흡하다는 건 혼란 속에서도 도전과 실패에 대한 개방성을 높이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의 결이 달라지는 거, 지금 이 시점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그거다. 

그래서 "이 나이까지 나는 뭐했나"하는 자괴감, "열심히 살았는데 왜?"라는 위축감에도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적응하고 달라졌어!" 큰소리 치는 '변신'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성공'이란 걸 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삶을 복닥이며 살아간다. 다만 그 '성공'하는 이들의 지향점과 스케일의 차이가 가장 크다 할 수 있겠다. 

이 경계에서 나는 '화끈한 변신'을 하진 못한다. 아직은 시간이 짧고 더 경험해야 할 게 더 많기 때문에. 

그저 익숙했던 세상에서 다른 경험들이 스며드는 중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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