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by 윤슬작가

육아를 이어오는 동안 마음속으로 가능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있다. 원칙 또는 철학 같은 것인데, 방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그런 요구를 할만한 상황인지 되묻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숙제에 관해 얘기하는 상황이라면,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일을 하거나 책을 하거나 하다못해 청소를 한다. 아이에게 학생의 역할에 대해 강조할 때 나의 역할을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나의 행동이 아이가 행동하는데 방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한다. 그러고는 가능한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끝냈다고 얘기하면, 그때부터는 자유를 보장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아침부터 일어나 게임을 시작해 밤늦게까지 한다고 얘기하면 먹을 것을 준비해놓고 마음껏 즐기라고 말해준다.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배우고, 책임과 자유가 별개의 과정이 아니라는 경험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생각이 만들어졌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나의 행동을 살피고, 내 행동이 말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몇 가지 삶의 철학 같은 것도 생겨났고, 그것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단순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육아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어쩌면 아이들이 어릴 때 몇십 번 읽고 또 읽었던 어떤 글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다"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까닭에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여러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 문장이다. 어떤 날에는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왔고, 어떤 날에는 단호한 가르침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내 뒷모습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가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지켜보다가 물어볼 때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은 나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를 향하고 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고, 절제를 배우고, 용기를 배우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당연히 그 경험을 위해 나와 내 삶을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살다 보면 다리에 힘이 꺾일 때가 있고, 뭔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아침에 눈을 뜨기 두려울 때가 생겨난다. 내가 그랬듯, 아이들에게 그런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 날에 나의 실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러니까 순간을 넘을 수 있는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나 할까.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부자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더 멋진 말을 알고 있다.


"누구나 삶에는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좋은 기억은 그때 힘을 발휘한다. 그 순간을 넘기는 힘을 만들어준다"


만약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저 문장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가길 바라본다. 1그램의 용기, 1도의 따듯함으로 삶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것을 위해 내가 아이들에게 스스로도 해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희망, 용기가 꺾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묻고 또 물어본다. 그렇게 십 년, 그 이상의 세월을 지나온 시간,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깨닫게 되었다는 것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정말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감정과 생각을 두 아이 덕분에 많이 하게 되었다. 진짜 아이들이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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