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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Aug 19. 2024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짧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이야기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는 낯선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정리하는 글이 될 것 같고, 현재의 마음가짐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약간의 확장성이 허락된다면 누군가 마침표를 찍는 일에, 어떤 이가 새로운 점을 찍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얘기했듯이, 저는 글을 쓰고, 책 읽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취미로 무엇을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 일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2013년 7월 친구와 함께 어떤 끄적임을 했습니다. 만약 단계를 부여해야 한다면 첫 번째 단계였고, 불평거리를 찾기보다는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친구 집에서, 동네 카페를 빌려서,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었습니다.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뭔가가 마구마구 샘솟는 기분을 그때 제대로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와 저는 아주 커다란 결심을 했습니다.      


‘작은 공간을 구하자.’     


아파트 근처에서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을 친구와 친구 남편, 그리고 저와 제 남편, 이렇게 넷이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옮겨 나름 아득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친구와 취향이 달랐고, 애초에 저는 취향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 덕분에 그곳은 예술공간이 되었고, 책과 글을 함께 나누면서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10평 남짓한 공간. 두 번째 단계라면 단계이고, 시도라고 하면 시도라고 할 만한 역사적 사건인 셈입니다.     


2018년이 되었을 때 ‘뭔가를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의지가 친구와 저에게 동시에 찾아왔고, 많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이 생겨났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보태주었습니다. 조합, 비영리 조합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상황은 다양했고, 문제는 복잡했고, 마음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일이 그렇듯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료로 보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기보다 현재 상황을 바꿀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5년을 보냈습니다. 조합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을 때, 무엇이든 될 수 있겠다, 혹은 이것은 해보고 싶었다는 뜨거운 열정이 생겨났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있는 이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3년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제게 이곳을 ‘놀이터’라고 표현하던데, 되돌아보니 그렇습니다.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시도해 보고 싶었던 것, 경영자적인 마인드를 발휘해 해냈던 것, 감사한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겼던 것, 뭔가에 의해 저절로 마무리되었던 것까지. 제 발로 찾아왔다기보다는 제가 찾아가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돈과 시간, 정성을 이곳에 쏟아부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 공간을 아꼈다는 것이 자신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가능성, 적어도 진실이라고 믿어볼 만한 것이 이곳에서 뻗어나가기를 희망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충만한 감정을 교류하는 기쁨,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배려, 물어봐야 할 것과 묻지 않아야 할 것의 경계를 아는 지혜까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저도 또 한 걸음을 내디뎠고, 또 하나의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약간 어설펐고, 조금은 부산스러웠던 기억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날이 감사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는 9월,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합니다. 더 오래 남아서 일하고, 더 깊게 도달해 보고 싶은 것을 향해, 부족함을 들추기보다 대범함을 부추겨 낯선 공간을 애착하기 위해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만약 삶에 껍질이 있다면 벗기는 일이 될 것이고, 삶에 색채가 있다면 더욱 또렷해지는 기회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지금을 가장 좋은 날, 지금의 선택을 가장 좋은 선택으로 믿어볼 생각입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끝은 분명 아름다울 거라고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결과를 떠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극히 중요하다고 할 만한 것, 꼭 지녀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지니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from 윤슬 작가     


#이야기가시작되는곳 #윤슬작가 #기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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