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안 꾸면 돌아버려

by Keepbook


"꿈을 꾸지 않으면 미쳐버려. 책에 그렇게 나와. 배출구라구.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 꾸면 돌아버려. 그런데 나는 꿈이랍시고 꾸는 게 비타민뿐이란 말이야.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 <비타민>, 레이먼드 카버



#

어느 가을 아침, 나는 평소와 똑같이 집을 나와 육교를 건너 회사에 가고 있었다. 차가운 도로는 아침 햇살을 받아 노랗게 빛나고 있었고, 그 위로 자동차들이 가볍게 지나다녔다. 하늘에서 나뭇잎들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특별할 것은 없는 하루였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나는 슬퍼지고, 울적해졌다. 나뭇잎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정도로 슬퍼질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궁금한 적이 있다. 나뭇잎 때문에 슬퍼지는 사람이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고작 나뭇잎 때문에 걸음이 늦어지고, 울적해지고, 눈물까지 차오르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과연 회사를 버틸 수가 있는 건지 정말로 궁금했다.


가게 몇을 지나고, 횡단보도 두 곳을 지났다. 큰 중학교 하나를 지나 한적한 거리에 들어선 후 회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나의 이러한 울적한 마음을 최대한 숨겨야만 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다니는 것은 정말로 축복인 거라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가슴을 쓸어내릴 일인지에 대해서도 또 궁금했다. 내 마음을 숨기려면 시간이 훨씬 더 필요했는데 말이다. 그때의 나는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으나 궁금한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해답 없이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책상에 가서 앉았다. 같은 층 사무실 안에는 대략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자리에 서 있거나 돌아다녔으나, 대부분은 돌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은 하나같이 나와 비슷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나처럼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나뭇잎을 보고 싶어서 문득 사무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창문은 아주 멀리에 있었다. 나는 그 창문을 통해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겨우 볼뿐이었고,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았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슬퍼하던 나는 내 마음대로 바깥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 슬퍼졌다.


나의 슬픔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건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 눈동자에서 오고, 내 의자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보는 것들로부터 슬퍼지고,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인해 슬퍼졌으므로. 나의 이러한 슬픔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슬픈 상태로 앉아서 일을 하고, 회의에 들어가고, 다시 일을 했다.



#

아마도 내가 그런 식으로 슬펐기 때문에 내 주변에도 그런 식으로 슬픈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 같다. 같은 업무를 하던 한 친구는 혼자 사는 원룸이 자꾸만 좁아진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네 벽면이 자기에게로 향해서 좁아진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마침내 방이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고, 그래서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뛰쳐나왔고, 그렇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슬프고 무섭고 우울하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다른 한 친구는 퇴근길 버스만 타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도로에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 자동차 후미등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그 또한 웃으며 말했다. 왜 하필 후미등을 빨간색으로 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조등처럼 노란 불빛으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버스에서 그렇게까지 숨이 막히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혹시 나뭇잎 때문에 슬펐던 적이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들의 슬픔이 나와 같은 종류인 건지 궁금했다. 나뭇잎 때문에, 태양 때문에, 잠깐 스쳤다가 사라지는 바람 때문에 슬퍼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는 그런 사람인지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질문을 입밖에 내지 않았고, 말없이 그들의 슬픔들을 들어줄 뿐이었다.


내가 나의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는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슬픔에 빠질 때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모습을 떠올렸다. 꿈속의 나는 회사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나는 그 일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며, 그래서 내 인생을 그 일에 쏟아붓는다. 그렇다고 너무 일만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함께 걷고,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작은 집도 한 채 짓고, 그 앞에 아름다운 정원도 가꾸며 산다. 자주 또 많이 웃고,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여행도 가고, 책도 읽는다. 어쩌면 나만의 서재를 가질 수도 있겠지.


그것이 나의 꿈이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었다.



#

꿈. 이것은 나에게 중대한 존재였다. 나는 꿈으로 도피했고, 꿈꾸듯이 살려고 했다. 사는 일이 무의미해질수록 나는 더욱더 꿈에 집중하여 몽롱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의 무의미는 더욱 커졌다는 점이었다. 나는 더욱 쉽게 몽롱해졌고, 그래서 누가 나를 부르면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게다가 나의 많은 꿈들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이루어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꿈이 회사 안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나는 좀 덜 슬펐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 나에게 얘기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회사원이 꿈이었던 한 남자가 회식 자리에서 오열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자신의 꿈이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울었다고 했다. 꿈을 이룬 셈이었지만, 동시에 이루지 못한 셈 이이어서 울었던 것일까. 그가 되어버린 회사원과 어렸을 때 꿈꾸던 회사원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래, 정리해 보자면, 그의 꿈은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이다.


나의 꿈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면서 나는 여러 날들을 슬퍼했다. 그러다가 실제로는 어떤 의미심장한 꿈을 꾸기도 했다. 꿈속에서 나는 거대한 배에 타고 있었다. 파도가 이리저리 요동쳐서 배는 곧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다. 꿈속의 나는 선장이었고, 집게손가락으로 수평선 끝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모두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배는 위태로웠지만 희망이 있었다. 나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다.


같은 꿈을 나는 수 차례 꾸었다. 나는 이 꿈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나의 내면에 억압된 남성적 에너지가 꿈으로 탄생한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나의 꿈이 조각조각 나뉘어져서 영화 같은 장면의 꿈이 되어 나타나는 것인가도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꿈 분석가가 아니므로 정확한 해답은 이번의 경우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의식의 꿈 말고, 나의 진짜 꿈을 찾아내고 싶었다. 나는 퇴사를 했고, 시험을 준비하다가, 이직을 했고, 또 이직을 했다. 한 회사에서는 퇴사 인사 메일에 ‘꿈을 찾으러 가겠다’는 문장까지 써넣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 그 당시의 동료 하나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진짜 꿈을 찾았냐고. 나는 그의 말에 헛헛하게 웃을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의 꿈을 찾아냈다고. 알고 보니 내 꿈이 내 안에 있었다는 파랑새 같은 결론은 결코 아니라고. 나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드디어 나는 깨닫게 되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꿈을 찾은 일이라고.


꿈이라는 무거운 단어는 여전히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 그래, 나는 꿈이 없으면 돌아버리는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나와 회사로 향하는 그 거리를 다시 걸었다. 나뭇잎이 떨어졌고, 나는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다시 걸어나갔다. 이제 더 이상은 꿈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나의 꿈을 내 주변 가까이 두고, 그것을 느끼며, 바라보며, 꿈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뿐. 그래서 해답 없는 나의 인생을 그저 살아나갈 뿐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