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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성 Dec 11. 2023

지나간 낙엽의 자리를 보며

관계의 낙엽

나는 종종 관계의 종말을 목도(目睹)한다. 연이 끊긴 사람들. 그 끝에는 길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남겨진 시간들의 낙엽을 구경하고는 한다.     


사람이 없어져도 그 관계의 낙엽은 꾸준히 남아있다. 길 위에 사람이 아무리 쓸어버려도 길 한쪽 구석에는 낙엽들이 있다. 이 낙엽들이 다 썩어서 먼지가 되어 날아가지 않는 이상 낙엽은 언제라도 남아있다.      


우리는 평생 살아오면서 많은 낙엽을 떨어뜨렸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저,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관계의 흔적일 뿐이었다. 그 사람과 먹었던 것, 그 사람이 입었던 것. 그 사람의 속옷 색깔과 점의 위치까지도 낙엽이 되어 바닥을 수북하게 했다.      


나는 굳이 이 낙엽들을 치우려 애쓰지 않았다. 언젠간 썩어서 거름이 되리. 내 마음의 작은 새싹을 잘 보듬어 주길. 내가 떨어뜨린 낙엽이 내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내게 낙엽은 ‘끝’의 다른 이름이었다. 낙엽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최근에 좋아하게 되었던 사람을 잃었다. 사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용기를 내려고 꿈틀대던 찰나에 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나 혼자 한 사랑은 낙엽이 되어버렸다. 요즘 나는 그와의 낙엽을 뒤집어쓰고 울고는 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이치라고는 하지만, 너무 냉혹했다. 그의 죽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가 떠난 지 너무 오래되고 나서야 연락이 닿았다. 이미 없어져 버린 그의 비즈니스용 메일에 글을 썼다 지웠다. 그리고 또 썼다.      


이제는 한쪽으로 그와의 낙엽을 치우려 한다. 너무나도 미끄러운 낙엽이라, 몇 번이고 넘어질 것만 같아서 한쪽으로 치웠다가 아주 가끔 찾아보려 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은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른다. 멈춰있는 시계도 없고, 종달새도 시간을 맞춰 잘 나온다. 그러므로, 그냥 사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낙엽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안녕 낙엽아, 잘 부탁해. 항상 고마워.     


이제 1000자를 갓 넘었다. 나는 오늘도, 나의 낙엽을 마음껏 둘러보며, 나의 새싹을 열심히 관찰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그 누군가를 어느 정도 사랑한다는 뜻이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비로소 가능했다.


오늘도,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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