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86편 - 방향의 회복

AI 시대, 사유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세운다

by 사유의 무지랭이

* 방향의 회복

<AI 시대, 사유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세운다>


[속도와 사유의 틈]


AI는 순식간에 정리한다.

요약하고, 배열하고, 결론을 낸다.


우리는 그 결론을 소비한다.

이해했다는 감각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각을 사유로 착각하고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속도와 사유에 틈이 생긴다.

이해의 속도와 사유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계는 많은 것을 빠르게 처리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유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이해한다.


이 둘 사이의 틈에서

사유의 진짜 속도가 드러난다.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사유로 통과했는가가 빠름의 기준이 된다.


[결과의 소비와 과정의 상실]


결론은 즉각적이다.

과정은 느리다.


우리는 점점 더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소유하려 한다.


결과를 알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정이 빠진 결과는

사유의 리듬 측면에서는 완벽하지 못하다.


정보는 머물러 있지만,

정보의 기준은 형성되지 않는다.


사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견디는 능력이다.

결과 값도 과정이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사유의 결과 값을 끄집어내는 데는

시간의 과정이 무엇 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이 인간이 이제 까지 문명을 만들고 지켜오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앞으로도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반응하는 생각과 질문하는 생각]


우리는 빠르게 판단한다.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는 것을 실시간으로 판단한다.


이 판단은 빠르다.

그러나 대부분 순간적 반응 일 뿐이다.

진정한 반응이라 볼 수 없다.


반응은 외부 자극에 의해 발생한다.

사유는 내부 질문에서 발생한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그러나,

질문은 오래 남고 길게 유지된다.


AI가 던진 답 위에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유는 창조가 된다.


질문은 효율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이 사유의 문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사유의 외주화]


궁금함이 생기면

먼저 생각하지 않고 묻는다.


완성된 구조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다.


스스로 논리를 구성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편리함은 사고를 대체한다.

대체된 사고는

기준을 약화시킨다.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외부 속도에 종속된다.


사유는 외주화 될 수 없다.

외주화 된 것은 정보일 뿐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 사유의 외주화(인지의 외주화)


<니콜라스 카 (Nicholas Carr)>

인지적 외주화의 위험성 경고.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Bernard Stiegler)>

탈숙련화 (Proletarianization)


<마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계산적 사고 (Calculative Thinking)


<앤디 클라크 (Andy Clark) & 데이비드 차머스 (David Chalmers)>

연장된 정신 (The Extended Mind)


<첨부>


계산기는 숫자를 대신 처리해 준다.

처음에는 편리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우리는 계산의 과정을 잊는다.


어떤 공식을 써야 하는지,

왜 그 식이 나오는지,

중간 단계에서 무엇이 변하는지를 잊는다.


결과는 알지만

구성은 모른다.


이것이 인지의 외주화다.


생각의 비용을 줄이는 대신

사유의 근육을 줄인다.


편리함은 능력을 대체하고,

대체된 능력은 점점 퇴화한다.


우리는 답을 더 빨리 얻지만

논리를 덜 소유한다.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위험은 무지가 아니라

구성 능력을 잃는 데 있다.


[느린 사유의 힘]


AI가 빛의 속도로 답을 낼 때

인간이 멈추는 순간은

뒤처진 것이 아니다.


그 멈춤은 핵심을 찾는 과정이다.


데이터 이면을 묻고,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정답 없는 질문을 오래 붙드는 일.


이것은 느리다.

그러나 방향을 만든다.


속도는 계속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기준은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사유의 회복은

속도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다.


속도를 통과하면서도

내부 정렬을 유지하는 일이다.


기계는 연산한다.

인간은 기준을 세운다.


기준이 굳어질 때

비로소 방향이 회복된다.


[부연]


명패는 판단을 단순화한다.

권위는 사고의 비용을 줄여준다.


그러나 비용이 줄어든 자리에는

검증이 빠진다.


‘누가 말했는가’가 기준이 되는 순간,

판단의 주권은 이동한다.

논리는 내용이 아니라 지위에 기대게 된다.


권위에의 의존은

생각의 오류이기 이전에

책임의 이전이다.


밀그램의 실험이 보여준 것은

악의 특별함이 아니라

복종의 일상성이다.


*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도 파괴적인 과정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사유문명론이 강조하는 '나만의 결을 가진 사유'는

바로 이러한 맹목적 복종의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저항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유문명론 70편 - 인격의 리듬이 흐르는 방향> 참조


명령은

도덕을 잠시 정지시킨다.

브랜드, 학벌, 직함은

선택을 빠르게 하지만

정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검증되지 않은 권위는

자원을 왜곡하고

판단을 편향시키며

개인의 내적 기준을 약화시킨다.


사유는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권위를 통과하는 과정이다.


판단은

항상 스스로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 리듬과 존재

70편 <인격의 리듬이 흐르는 방향>

72편 <리듬이 이름을 버릴 때>


사유가 개념(지식)을 벗고 존재의 움직임(리듬)이 되는 단계를 설명했다.

리 오스카의 음악이 바로 이러한 '사유의 형상화'를 보여준다고 느낀다.


가볍게 간다.

<Lee Oskar : Before The Rain>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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