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90편 - 사유하는 인간

문명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조건

by 사유의 무지랭이

* 사유하는 인간

<문명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조건>


[계산과 판단]


계산은 반복 가능하다.

판단은 고독하다.


계산은 같은 조건에서

언제나 같은 답을 낸다.


그러나 판단은 다르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그 차이가

인간을 기계와 구분하는

가장 오래된 경계다.


정보는 자동화될 수 있다.

처리는 자동화될 수 있다.

반응도 자동화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고독한 판단의 무게 위에 선다.

책임을 외주화 하는 순간 문명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 책임의 외주화


인간이 직접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영역까지

기계에 맡기게 되면,

AI가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책임의 주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정답의 안락사]


인류는 오랜 시간

답을 구하기 위해 문명을 일구어 왔다.


굶주림에 대한 답으로 농경을,

고립에 대한 답으로 통신을,

무지에 대한 답으로 교육을 발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AI라는 거대한 답의 집합체가 출현했다.


이제 인간은 묻지 않아도 답을 얻는다.


그러나 역설이 시작된다.

답이 선명해질수록

존재의 윤곽은 흐릿해진다.


정답이 넘칠수록

질문은 노이즈가 된다.

사유는 비효율이 된다.


문명은 편리함을 주는 대가로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조용히 가져간다.


정답의 안락사는

고통 없이,

저항 없이,

사유가 잠드는 상태를 말한다.


[사유의 조건]


사유는 속도를 늦춘다.

사유는 불편을 감수한다.

사유는 결정을 유예한다.


그래서 사유는

효율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유하는 사람은 느려 보인다.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유예의 시간 안에서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빠르게 내린 판단은

빠르게 교체된다.


오래 머문 사유에서 나온 기준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유의 유예 끝에

비로소 기준이 세워진다.


그 기준이

한 사람의 문명이 된다.


[사유는 외주화 되지 않는다.]


궁금하면 묻는다.

불안하면 검색한다.

선택이 어려우면 추천을 따른다.


편리함은 사유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주화 된 판단은

기준을 만들지 못한다.


정보는 받을 수 있다.

논리는 빌릴 수 있다.

결론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 결론을 감당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유는 외주화 될 수 없다.

외주화 된 것은 정보일 뿐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정답의 폐허 위에 남는 존재]


화려한 데이터의 탑이 무너지고

정답의 소음이 잦아든 그 자리에


마지막까지 서 있는 것은 누구인가.


문명이 제공하는 모든 해답이 사라진

그 적막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사유하는 인간이다.


문명은 도구로서 인간을 편리하게 한다.

사유는 존재로서 인간을 존엄하게 한다.


도구는 수명을 다하면 사라진다.

존재는 시간을 통과하며 남는다.


[문명이 자동화]


문명이 자동화될수록

반복적인 것은 기계에게 넘어간다.


계산, 처리, 생산, 예측.

이것들은 점점 더 빠르고

점점 더 정확하게 자동화된다.


그러나 자동화가 완성될수록

남는 것은 하나다.


선택의 무게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디에 쓸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질문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언제나

인간의 자리에 남겨진다.


문명이 자동화될수록

인간은 선택의 무게로 정의된다.


[남는 것]


문명은 계속 바뀐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속도는 계속 빨라진다.


그러나 끝까지 남는 것은 하나다.


사유하는 인간.


계산하지 않고 판단하는 존재.

효율보다 의미를 묻는 존재.

자동화되지 않는 책임을 감당하는 존재.


정답이 넘치는 이 시대에

당신은 어떤 질문으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


문명 이후에 남을 존재는

오늘 당신이 던진

그 낯설고 불편한 질문 속에

이미 존재한다.


그것이

문명 이후에도 남는

인간의 조건이다.


[부연 - 검투사 이야기]


오늘의 검투사는

날아오를 줄도 모른다.

높이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오늘 살아 있음을 먼저 확인한다.


관중은 넘치고.

환호도 넘치고.

비명도 넘친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목숨을 건지면.

오늘의 숨을 쉬게 되고.

오늘의 걸음을 걷고

오늘의 한 줄을 남긴다.


검투사는 승리를 계산하지 않는다.

오늘 쓰러지지 않은 것을 기록한다.


오늘 하루를 버텨냈다.

하루를 버틴 값은 크다.


날줄 모르는 자는

추락도 모른다.


그래서


검투사는 속도로 살지 않는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살아 있음에 만족한다.

그저 주워진 시간의 지속으로 살아낸다.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내일도 칼을 다시 든다.


이어 <사유문명론 91편 — 멈춤의 힘>으로 이어집니다.


* 율리우스 푸치크(Julius Fučík)

검투사의 입장

Einzug der Gladiatoren, O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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